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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헝거 게임 - 수잔 콜린스

by 양손잡이™ 2012. 4. 27.
헝거 게임 - 8점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북폴리오



045.

일본 영화 '배틀로얄' 기억나십니까?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고등학교 한 반이 배틀로얄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어 서로 죽고 죽이던 영화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이 영화를 봤는데 처음에는 피 때문에 기겁을 했어요. 그런데 그걸 조금 참고 영상을 보다 보니 신기하게도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익숙해지더라고요. 영화 안의 인물들도, 처음엔 방금 전까지 그리 가까이 지내던 친구를 해꼬지하지 못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로를 죽입니다. 이것도, 그냥 익숙해진 거겠지요.

<헝거 게임>의 두 주인공 캣니스와 피타는, 이런 배틀로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합니다. 무시무시하고 설명하기 복잡한 어떤 미래에, 판엠이라는 나라의 수도 캐피톨은 주변 도시의 반역에 의해 무너질 뻔했지만 겨우 막아냈습니다. 주변 도시에게 겁을 주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한 구역을 없애고 남은 열두 구역에서 매해 조공인 두 명씩을 뽑아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합니다. 24명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며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구역의 다른 참가자도 쳐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올해의 헝거 게임은 비극적인 두 남녀, 캣니스, 피타와 함께 막을 엽니다.

그렇게도 재밌다고 다들 손가락을 추켜세우던 책이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영화화까지 되었지요. 무슨무슨 게임이란 제목을 보면 일반 장르소설보다 추리나 스릴러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이번에 개봉한 영화가 아니었으면 전 이 책이 판타지 성을 띄리라곤 전혀 생각치도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을 말해보자면 이 책, 최근 이슈가 되는 데다가 갑자기 할인하길래 산 거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사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띠지에서 스티븐 킹이 이 책을 칭찬해도, 베스트셀러여도, 전미 박스오피스 1위여도 처음에 딱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영 책을 읽을 맛이 안 생기거든요.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사놓고 거의 2주일 이상 서랍 한 구석에 쳐박혀 있었지요.

그래도 이런 선입견을 깨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몰입도가 뛰어나 단 세 번 책을 펼쳤는데 훌쩍 다 읽어버렸지요. 어떤 것보다도 '헝거 게임' 자체가 주는 긴박감이 엄청납니다. 물론 인물 사이의 감정선 생성이나 변화도 흥미롭지만 한정된 공간(하지만 사실은 엄청 넓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재밌습니다. 살기 위해 프로 조공인에게 어깨 쫙 펴고 허세를 부리고는 말벌집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라든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자 게임의 관리인들이 숲에 불을 질러 조공인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하는 장면 등,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게임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이 흥비를 부릅니다.

하지만 곳곳에 책을 덮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헝거 게임' 자체가 주는 역겨움 때문이지요. 부와 가난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불평등은 당연하게 뒤따릅니다. <헝거 게임>에서도 이런 현상이 크게 두드러집니다. 소설의 골자인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는 추첨표는 한 사람에게 1년 당 하나 씩 돌아갑니다. 그리고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배급표 한 장와 추첨표 한 장을 받을 수 있죠. 캣니스와 동갑인 한 아이는 배급표가 무려 캣니스의 3배랍니다. 죽음을 담보로 단지 죽음을 연장할 뿐이지요. 아이들이 서로 피를 보며 싸우고 있는데, TV로 그 광경을 보며 신난다고, 헝거 게임을 자신들을 위한 쇼라고 생각하는 캐피톨 사람들도, 우웩.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도 단지 '헝거 게임' 우승자 배출 도시라는 허명을 얻기 위해 프로 조공인들을 내세우는 다른 도시도, 우웩. 자신들이 쇼에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불평등한 사회에 아무런 소리 내지 못하는 루저들에게, 우웩.

게임이 주는 긴박감을 이끌어 가는 데 다소 부족한 점을 느꼈다는 걸 굳이 단점으로 꼽겠습니다. 긴박감 외에 스토리나 감정처리가 다소 허술하고 유치했습니다. 화자가 16살의 어린 아이라서 그런 걸까요? 스토리 진행은 너무나 뻔하고 사이사이에 숨겨진 비밀 따위 없이 일직선방향으로 진행되서 이리 느꼈나 봅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줄어드는 것도 확연히 느꼈습니다. 제가 '왜?' 하며 궁금해 했던 것들은 아마 2부나 3부에서 밝혀주겠죠. 안 밝혀주면, 이건 그냥 그 상황을 위한 떡밥일 뿐이므로 작가에게 완전 실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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