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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팔팔 뛰는 맥을 찾길 바라며 - 누구 (아사이 료)

by 양손잡이™ 2013. 10. 29.
누구 - 6점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은행나무



100.


  많은 이들이 개방형 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떠나서 다시 폐쇄형 SNS로 회귀하고 있다. 타임라인의 홍수라고도 할 수 있는 트위터는 무의미한 팔로잉 때문에, 페이스북은 각종 광고로 뒤덮인 뉴스피드 때문에 인기가 식는다. 싸이월드 때부터 익히 알려진 허세나 자기 과시를 위한 미사여구로 뒤덮인 프로필 등 익명성이 가지는 문제는 그 무대가 어디든 횡행한다.


  1989년생 어린 작가가 쓴 <누구>는 근래의 시각으로 익명성의 공간의 문제를 풀어내었다. 연극 동아리를 나와 그와는 정반대의 취업길을 택하려는 다쿠토, 밴드 출신의 고타로, 고타로의 옛 연인이자 유학파 미즈키, 미즈키의 친구 리카 등 취업을 앞두고 스터디를 하는 4명의 대학생과 주변 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단순히 취업이 소재라면 아무리 젊은 작가가 그리는 생생한 이야기라도 나오키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취업 이야기가 극을 이끌어가는 데 큰 원동력이지만 근본적으로 이야기의 바닥에는 SNS가 깔려 있다. 등장인물 소개을 그들의 트위터 프로필로 대신하고 각 장(章) 시작이나 끝은 인물들이 쓴 트윗이다.


  트위터는 140자 이내의 짧은 글밖에 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인 단어를 써야만이 한정된 공간에 자신의 뜻을 정확히 전할 수 있다. 이 효율적이란 단어, 참 좋아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쓸쓸하기도 하다. 최소한의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버린 말이 필시 있기 때문이다.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 버리는 문장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순간, 실질적으로 한 사람을 표현하는 건 버려지고, 선택되지 못하는 단어가 된다.


  비슷하게 선택된 단어 때문에 사람들은 몰개성화(化)되어 보인다. 주인공 다쿠토는 친구인 긴지와 리카의 애인 다카요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둘의 트윗은 얼추 비슷하고, 우리가 보는 건 트윗뿐이기 때문에 그 둘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사고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위해 비슷해 보이는 것끼리 한데 그룹화하는데, 이는 그저 표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이나 현상을 판단하는 위험을 낳는다. 효율성을 외치는 시대에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상상을 통해 짧은 트윗 너머 진짜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팔로잉 시스템도 트위터를 불편하게 만든다. 처음 보는 사람을, 단지 프로필만 보고 팔로잉 하는 것. 트위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한번씩 거친 단계일 것이다. 맞팔 100%를 외치며 여기저기 팔로잉을 하고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런 행동에 환멸을 느끼고 트위터를 떠나오는 사람도 많다.


  본능적으로 팔로잉/팔로워 숫자가 무의미함을 느낀 것이다. 인맥의 '맥'자는 맥박의 '맥'자와 같다. 맥박은 피부 밑에서 뛰고, 우리가 산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타임라인에서 맥박을 느낄 수 있을까. 대부분의 트윗은 메아리가 없이 그저 퍼질 뿐이다. 갑자기 어디서 만나자고 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이건 진짜 '맥'이 아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에 대고 아무리 말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무의미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도 보인다. 명함이나 인상을 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든가 인맥을 넓히기 위해 관심에도 없는 단체활동을 하는 것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이 냉소를 가장하여 남을 비방하는 행동하면서 남에게 관심받는 것을 즐기는 부분은, 무대가 트위터 비밀 계정일 뿐 이미 익숙한 장면이다.


  SNS에서 느껴지는 많은 장단점이 이미 많이 알려지는 지금에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고 평이하게 느껴져 아쉽다. 인간관계에 대한 통속적 통찰을 젊은 감각으로 SNS와 취업 등의 트렌드에 맞춰 이야기를 잘 풀어내서 좋은 평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10점, 20점짜리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큰 실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자 강신주는 가면이란 약자가 쓰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에게 진짜로 부딪히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당당한 것이다. 팔팔 뛰는 진짜 맥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SNS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정말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데 쓰고 답장을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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