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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by 양손잡이™ 2013. 11. 7.
안나와디의 아이들 - 10점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반비



101.


  인도라. 인도라면 세계 인구 2위의 나라, 카레, 영국, 유혈사태의 간디, 영화 '세 얼간이', 무한도전(…). 그렇게 많은 게 떠오르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유럽권이나 미국보다 당연히 적다. 인도에 대해 자세히 접한 건 거의 없고, 곽재구의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나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에서 릭샤를 접했다. '세 얼간이'나 뚜루뚜루뚜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코믹에 가까운데, 책과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인도는 너무나 어두웠고, 그들이 삶은 처절했다.


  1947년 독립 전후 인도는 농업국가였지만 50년대부터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시장개방 및 경제자유화를 본격화하고 소외계층의 빈곤을 타파할 정책을 계속 펼친다. 경제 발전의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2차 산업뿐만 아니라 3차 산업도 발전한다. 인도에는 관광지가 만들어졌고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다. 외국인이 인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공항이 필요하고, 자기 위해서 호텔도 필요하다. 밤새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 휘황찬란한 관광도시 뭄바이에서 몇 발자국만 넘어가면 빈민촌이 나온다. 안나와디다.


  책은 고철을 모아 분류하여 되파는 소년 압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외다리 여자가 불타 죽어서 경찰이 압둘 부자(父子)를 쫓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철 보관소에 숨기려 했다. 하지만 여자가 소사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압둘은 숨는 것은 죄지은 사람만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에 법과 정의를 믿고 경찰서로 향했다. (프롤로그부터 한참 뒤에 뒷내용이 나오는데, 압둘의 믿음은 헛된 것이었다)


  안나와디의 생활은 처참하다. 식수를 얻기 위해서는 두 시간이 넘게 줄을 서야 하고 안나와디를 가로지르는 개울에선 썩은 내가 떠날줄 모르며 축사 옆 길이 3미터에 폭 1.8미터인 오두막에서 악취와 함께 아버지와 어린 두 남매가 산다. 국가에서 교육을 위해 학교를 몇 세웠지만 학교는 기금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교육의 장은 되지 못한다. 노인의 다리가 차에 으스러져 길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아이들마저 외면한다. 피부가 좋지 않은 아이가 밤새 울자 아버지는 펄펄 끓는 콩 항아리를 자는 아이 몸에 쏟아붓는다. 경찰은 뇌물을 위해 애먼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심지어 높은 지위의 의사조차 뇌물을 요구한다.


  이런 환경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부패다. 빠른 경제 성장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인도 권력집단에게 기회는 대체로 내부 거래로 분배된다. 공항이나 호텔 건설도 웃돈을 많이 챙겨준 기업이 맡는다. 부패와 함께 나라가 개방되고 자유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의 집중은 심해졌다. 현재 인도는 부자 순위 상위 100명의 자산 총액이 국내 총생산의 25퍼센트에 육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 성장의 그림자인 '부패'를 앞세운다. 부패로 아주 많은 기회가 약탈되는 나라에서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몇 안 되는 순수한 기회인 것이다. 작중 인물인 아샤는 빈민촌 대표가 되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바꾸기 위해 경찰과 윗사람들에게도 돈을 주고, 심지어 저기 호텔에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애인도 있다. (딸인 만주는 당연히 싫어하지만)


  가난하면 똘똘 뭉쳐서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순위와 시장의 막강한 권위가 세상을 너무 변덕스럽게 만든 나머지, 이웃을 도우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위협받고 심지어 개인의 자유마저 위태로워지는 세상이 될 경우, 가난한 공동체의 상부상조 개념이 무너진다. 중산층은 나라의 추한 그림인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안나와디에는 빛이 들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글쎄, 인물들에게 달라진 건 없다. 옆에서 누가 죽어도 그뿐, 넝마주이를 하든 고철팔이를 하든 어제와 같은 날의 반복이다. 길고 어려웠던 외다리 여자의 살인 재판을 끝낸 압둘의 아버지 카람은 말한다. 꿈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 때조차, 그리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 모를 때에도, 그걸 잡으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언뜻 보면 끝까지 꿈을 좇으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리 뛰어도 앞의 빛은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강력한 고발서가 세상에 소개되어도 인도의 발전과는 반대로 안나와디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 같은 무서움과 분노가 나를 뜨겁게, 동시에 차갑게 만든다.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었으면, 강렬히 바란다. 너무나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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