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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잡담 - 내가 사랑을 못하는 이유?

by 양손잡이™ 2011. 9. 1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10점
박민규 지음/예담


- 박민규 작가의 장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짧게 끼적여봤다. 생날 것으로 적어 놓고, 수정하진 않았다.결국 무슨 말인지 모르게 곁다리로 빠졌고 괜히 커보이게 썼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슬프다. 발췌문은 2011/09/12 - [감상 이야기] - 사랑합시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을 참고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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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긴- 내 25년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매번 '그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오'라고 답했던 건 사실 거짓이란 걸 알 수 있다. 차마 부끄러워 말을 못했을 뿐, 실은 나도 마음이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지금 졸업앨범을 봐도 공주티가 나는 Y부터 시작해 중학교 시절 씩씩했던 B, 귀염상 H, 엘리트 S, 고등학교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나도 나름대로 혼자 속을 썩일 때가 있었단 말이지. 이 아이들을 내가 왜 맘에 들어하고 가까워지고 싶었을까. 간단하다. 당시에는 모두 한 미모 했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내 기준에선 꽤나 상위 클래스의 친구들이었다.

  중 3 때였던가, 학기 초에 한 친구와 짝이 되었다. 그런데 이 여자분은 덩치도 나보다 크고 솔직히- 조금 못생겼었다. 게다가 성격도 활발하지 못해 같은 성격인 나와는 거의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짝을 바꾸는 시간을 맞았다. 다음 짝인 Y는 외고진학의 공통 목표도 있었고 생김새도 서글서글해 대화도 많이 나누고 꽤나 친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Y가 그러더라, 첫 짝 (미안한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이 너와 친해지고 싶어했는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글쎄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 책의 말마따나 열일곱 살은... 그런 나이였다.

  요즘 여자친구가 없는 남자놈들끼리 모이면 학업, 게임, 스포츠 얘기 뒤에 간혹가다 여자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꼭, 나를 보며 하는 얘기는 "생긴 것과 다르게 여자 외모를 너무 많이 본다"이다. 사실이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야. (중략)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고. (220쪽)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부족한 점이 수도없이 많지만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외모다. 보통  이성친구를 만날 때 상대가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는가. 소극적인 나 대신에 적극적인 그녀를, 감정표현에 서투른 나 대신에 솔직한 그녀를, 뚱뚱하고 못생긴 나 대신에 작고 귀여운 그녀를... 은연 중에, 아니 분명 의식 중에 그렇게 바라왔다.

  참 부끄러운 얘기가 하나 있다. 시험기간, 공부에 지칠 때면 가끔 친구 J와 도서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눈다. 무슨 얘기? 뭐겠어, 앞에 보이는 여자들을 보며 감히 평가한다. 아니, 평가라기보다는 감상이라고 해야 할까. 또 내가 보기에 외모가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을 보면 지나간 후에 친구들과 그게 재밌다고 마구 웃어댄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신나게 웃었던 건 나뿐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간혹 내가 너무 심하다며 핀잔을 주는 친구가 있었고, 남자는 다 그런 거 아니냐며 이게 뭐가 어떻냐는 식으로 받아치곤 했다.

  그러니까, 그게, 내 열등감에서 나온 행동이라 이거지?

  내 부끄러움을 숨기고자 남의 부끄러움을 보고 마구 웃는 거다. 앞에 보이는 또 다른 나를 보고 그걸 견딜 수 없어 하하하, 수군수군수군.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이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75쪽)

  대학을 나와야 하고, 예뻐지기까지 해야 한다. 차를 사야 하고, 집을 사야 한다. 이런 내가, 대학을 가는 순간 세상의 평균은 또 한 치 높아진다. 이런 내가 차를 사는 순가에도...하물며 집을 사게 된다면 세상의 평균은 또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왜 몰랐을까,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이순간 세상의 평균은 올라간다. 누군가를 뒤쫓는 순간에도 세상의 평균은 올라간다. 나는 생각했다. (310쪽)


  열등감의 화신이 된 이유는, 자신을 믿지 못함으로서 남을 믿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회에 대한 닫힌 통념 덕이기도 하다. 할머니 말씀대로 서양과 물을 통하면서 좋은 것이 옳은 것인 세상이 되었다. 한복을 입던 미스춘향에서 수영복을 입는 미스코리아로, 원피스 수영복에서 비키니로, 무릎 치마에서 마이크로스커트로- 그러면서 모두 좋아지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잘 보일까 하며 운동을 하고 (그나마 양반이지) 화장을 짙게 하고 수술을 한다. 의료에서 미용으로- 어떤 것이 먼저인지 모를 이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참 우스운데, 웃을 수 없고, 따라가야 한다.


  몰랐어? 모두 바보라는 걸? (105쪽)


  맞다. 모두들 바보라는 걸 모른다. 아니, 분명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한다. 이 세상은 바보로 가득 찼고 바보스런 의지와 행동과 생각만이 남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바보들 중에 바보는 바보이기 때문에 바보의 순수함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좋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절대다수가 말하는 '옳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옳은 것'을 보곤한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 193쪽)


  이런 의미에서 난, 아직 바보도 되지 못했다. 아직도 출발선만 밟은 채 계속 살아왔는지 모른다. 출발하려는 마음도 없이, 계속 멍하니 서있다. 무의미하게 속으로 헛사랑을 외치고 더 좋은 것만을 찾으려고 두리번대는, 그런 멍청이 말이다. 노래 가사 '사랑해'는 그렇게 잘 외치면서. 이런 거 말고 진심을 담은 '사랑해'를 외치며 앞의 트랙을 밟을 날은 언제가 될꼬.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418쪽)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실패한 건 아니다. 조금 늦었다지만 이제 출발하면 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이리 많은데 지레 겁먹고 벌벌 떨 필요는 없다.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그 누구에게나 바보 같은 한 마디, 사랑해를 던지고 혼자 웃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본다. 앞의 인생이란 트랙을 달리는 내 이야기는, 조금 늦었지만, 곧 시작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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