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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오직 사랑만이 마음의 구원을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by 양손잡이™ 2012. 11. 18.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9점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문학동네

 

 

101.

 

  오스카는 110kg의 거구의 몸을 가진 도미니카 흑인으로 온갖 비주류 문화에 환장하는, 소위 오타쿠이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장르문학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말하니 여자친구는 커녕 남자친구도 안 생길 판이다. 오스카의 누나 롤라는 그와 정반대이다. 같은 흑인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받는 대접은 오스카와 정반대이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으며,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키겠다는 원대한 꿈도 가진 당찬 여학생이다. 아버지 아벨라르가 독재자인 트루히요에게 찍혀 순식간에 몰락한 명문가의 자식이 된 벨리시아는 오스카와 룰라의 어머니이다. 그런 벨리시아의 친척어른이자 오스카와 룰라를 끔찍히도 아끼는 라 잉카까지, 이 한권의 소설은 삼대의 이야기를 아주 재밌고 자세하게, 때론 처절하게 그린다.

 

  주노 디아스는 도미니카 태생이다. 도미니카는 쿠바 옆 큰 섬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써 본래 원주민만이 살던 섬을 콜럼버스가 발견하면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여러나라에게 통치권을 뺏기고, 독립하고, 반란이 일어나며 정치는 매우 문란해진다. 그 결과 가까운 강대국인 미국이 통치를 하면서 미군의 동의를 얻은 라파엘 트루히요가 나라를 지배한다. 그는 약 30년간 독재정치를 하며 족벌체제의 정치, 공포정치 등을 실시한다. 도미니카 공화국 역사에서 트루히요의 시대라고 알려진 이때를 20세기 최악의 폭정 중 하나라고 부를 정도이다. 소설은 바로 이 트루히요의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스카와 롤라의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도대체 어느 부분이 놀라운 삶을 얘기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뚱보 오스카가 글쓰기와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모습을 누가 보고 싶어하겠는가. 그 한도 끝도 없는 찌질함이란. 그와 정반대인 롤라의 여러가지 코칭(?)에 의해 차차 변해가는 성장소설이겠거니, 무표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뒤로 가면서 윗대의 이야기가 하나씩 불거져 나올 때마다 이야기는 어두웠던 도미니카의 역사와 함께 한없이 침잠한다. 31년 간의 독재에 조용히 숨죽여 살아온 한 가문의 이야기이자 개개인의 가슴 아픈 인생을 말한다. 이야기는 데 레온 가만을 조명하지만 사실 도미니카공화국 국민 모두가 각각 조금씩 사정만 다를뿐 모두 함께 겪은 역사이기도 하다. 한 가문의 이야기이자 처절한 역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오스카 와오의 삶은 왜 짧고 놀라웠을까. 소설에서 그는 대학교 졸업생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20대 중반이란 소리인데 짧은 삶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얼까. 오스카는 이런 편지를 남긴다. 진짜 사랑을 기다린 순간까지를 인생이라 부르고 싶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던 사랑을,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이 아름다움을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다고.(389쪽) 인생과 삶은 비슷한 의미를 지녔지만 약간은 다른 느낌이다. 인생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삶은 역동적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던, 그래서 혼자 고독했고 쓸쓸했던 시절은 오스카에게 그저 그런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부터 그는 자기의 존재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아닐까.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고, 그것이 진짜 삶이라고 말이다. 또한 30년 동안의 어두운 세월 속에서도 사랑을 위해 제 목숨까지 바쳤던 데 레온 가의 사람들도 보인다. 트루히요의 독재와 폭정도, 사랑을 뺏겨 분노에 찬 이들의 폭력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우리 모두가 천만 명의 트루히요라고 했던(378쪽) 롤라의 말은, 지독히도 아프게 폐부를 찌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천만 명의 오스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테다. 모든 건 진짜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으니 말이다.

 

  각종 장르문학 지식이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가 낯설다는 게 책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이다. 쪽 아래에 간단한 각주가 달려 있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지 작가는 책 뒤에 참고내용을 두껍게 두었다. 그 내용을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물론 앞뒤를 왕복해야 한다는 것이 작은 불편함이기도 하다. 서술 방식도 약간 번잡한데 여태껏 봐온 미국 소설이 대부분 이런 서술 방식을 취하기에 단지 취향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 사람. 사랑. 모두 엇비슷하게 생긴 단어들 아닌가. 어쩌면 세 단어는 원래 같은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놀라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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