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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랩 걸 - 호프 자런 (알마, 2017)
    독서 이야기 2018.03.31 12:53



    난 솔직히 생물학을 좋아하지 않아.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세포의 감수분열을 배우면서 생물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렸어.

    나에게 과학이란 단 두 부류였어. 세상을 수식으로 표현하면서 작은 양자 세계부터 거대한 은하까지 모두 보여주는 물리학, 세상의 수많은 화학반응을 발견하고 물질들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현상의 화학. 이런 면에서 과학은 경이에 가까웠지. 관심이 없다보니까 생물학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고.

    <랩걸>을 읽고나서 생명의 웅장함과 위대함, 단아함이란 무엇인지 조금은 느낀 것 같애. 어떻게 보면 생물학도 내가 좋아하던 화학과 일정 부분 겹치거든. 생물학의 많은 개념도 결국 화학식으로 풀이되는 경우가 있더라고. 과학은 그래, 물화생지, 처럼 완벽히 구분되지는 않는 듯해. 그저 감수분열을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생물학에서 눈을 돌려왔던 걸까.

    책은 생물학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식물의 생애에 맞춘 저자- 호프 자런 자신의 인생을 말해. 식물이 씨앗부터 자라 뿌리를 뻗고 줄기를 만들며 종국에는 꽃과 열매를 맺는 과정은,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일 수밖에 없겠지. 작가는 유사한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 식물을 자신과 동일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식물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것이기에 이야기가 더 풍부해진 느낌이야.

    이런 형식은 다른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가 비슷해. 삶과 죽음에 대한 통계와 명언, 일화 중간중간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 두 책의 비슷한 점은, 작가의 이야기 말고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이야기(<랩걸>의 경우 식물 이야기)가 주는 감정이 더 크다는 거야.

    울림을 줬던 문장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옥수수가 조직 1그램을 만드는 데 물이 1리터가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했다.

    1그램과 1리터가 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지만, ‘조직 1그램’이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서 느껴지는 웅장함이 더 커지더라. 단순히 무게로만 따지지 않고 말이지, 세포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생명을 만든다니, 놀라운 일이야. 말이 1그램이지 사실 그런 조직이 수없이 모여야 그만큼의 무게가 되거든. 귤 껍질을 깔 때 하얀 섬유질은 맛이 없고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떼곤 하는데, 귤나무는 열매를 맺으면서 이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을까, 그 생각을 하면 식물의 발화와 성장은 그대로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해.


    이제 숲에 가면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문장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놀랍고 흥미로운지 뼈저리게 느껴지더라. 양자영역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은 얼마나 충만한지, 이런 생명이 살아가는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생각도 들었어.


    유시민 작가가 딸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말했지만 사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 유작가나, 이 책을 즐겁게 읽은 사람과 이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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