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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나는 숨을 쉰다 - 아가미 (구병모)

by 양손잡이™ 2011. 5. 11.
아가미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구병모 (자음과모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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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쪽으로 생각보다 짧은 책이었다. 책표지의 일러스트가 상당히 예쁜데 학교 도서관은 표지를 모두 없애서 베이지색 민둥표지만 남았다. 커버를 넘기니 짧게 작가의 이력이 요약되어 있는데, 이런. 이름 때문에 당연히 작가가 남자일줄 알았건만 웬걸, 여성분이다. 그래서 남자보다는 더 섬세한 문장을 쓸 수 있었구나.
  이야기는 실수로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여자의 진술에서 시작한다. 다리 아래의 차가운 강물로 떨어져서 이제 죽는구나, 싶었는데 '누군가'가 헤엄쳐와 여자를 구해준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사람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여자를 대려놓고는, 다시 헤엄을 쳐서 사라진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누군가', 즉 책의 주인공인 곤을 찾는다. 곤은 어릴 적, 가난을 비관한 아버지가 같이 호수로 투신자살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아들은 놀랍게도 목 뒤에 두 개의 아가미를 가지고 물에서 헤엄쳐 나왔다 몇 년 뒤, 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자, 저는 그것이 사람이었든 물고기였든 혹은 네시였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가 저한테 한 번 더 살 수 잇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뿐이에요.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21쪽)

 
 뚝뚝 듣는 물기를 뒤집어쓴 상처가 다시금 꽃잎이 열리듯, 콩껍질 갈라지듯 살며시 벌어졌다. 석류 열매처럼 드러난 속살이 두근거리는 모습은 명백히 생명의 움직임이었따. 결코 아물어가는 상처가 억지로 쑤셔진 게 아니라, 희박한 산소를 찾아 호흡하려는 태곳적 기관의 발현이자 몸부림이었다. (39쪽)


 
 사회란 절대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어떤 누가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하겠는가?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걱정이 있는 법이고 일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또 걱정이 있는 법이다. 나는 완벽히 행복하다, 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맞다,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다. 살면서 물을 사용하지 않는 때가 없는만큼 물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친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물만 가득한 곳에 가면 헥헥거리기 일쑤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고통을 느끼며 숨을 쉬려 애쓰고, 결국 목 언저리에 아가미를 만들어낸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아가미. 사실 언뜻 보면 피부에 생긴 생채기 같이 생겼다. 우린 그 상처가 보기 싫어서, 또는 안쓰러워서 억지로 꿰매려고만 한다. 그 바알간 빛이 생명 그 자체인지도 모르고, 그 움직임이 물 안에서 필요한 호흡의 기원인지 모르고. 징그러워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우리는 아가미를 꽁꽁 숨기려고만 한다.


  "예쁘다" (131쪽)

 
 
 사실 그 상처는 숨길만큼 보기 싫지도, 징그럽지도 않다. 그곳으로 숨을 쉼으로써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가미는 생명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일테고, 그때문에 그곳은 인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곳이다. 하지만 두렵다. 한번도 예쁘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어서 괜스레 옷안으로, 또 가슴 안으로 그 '상처 비스무리한 것'을 꽁꽁 싸매기 일쑤다. 그건 그 존재가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각하지 못하는데서 문제가 옴이리라.


   엄마, 내가 인어를 봤다니까? 그 아저씨는 분명 바다 깊이 궁전에 사는 인어 왕자님일 거야. 그런데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두 다리가 생긴 거지.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187쪽)


  무심코 목 언저리를 만져본다. 생물학적 호흡은 여전히 코와 입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적 호흡은, 글쎄다. 아가미와 함께 잃은 것은 무엇일까?

(2011년 5월 10일 ~ 5월 11일,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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