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킹의 몸값 - 에드 맥베인

by 양손잡이™ 2014. 3. 1.
킹의 몸값 - 8점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024.


  처음 읽는 87분서 시리즈이다. 국내 출간된 시리즈 중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과 표지여서 계속 미뤄두었는데 워낙 칭찬이 자자해 꺼내들게 되었다. 그리고 87분서 시리즈의 왕팬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57편의 모든 시리즈가 국내에 얼른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


  더글러스 킹은 경쟁자를 제치고 보스턴 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한 기업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한다. 거래일 직전, 킹의 아들을 납치했다는 전화를 받고 놀라지만 웬걸. 아들 바비는 아무일 없다는 듯 집에 들어온다. 사실 유괴된 사람은 킹의 부하직원인 찰스 레이놀즈의 아들 제프였다. 바비와 제프의 금발머리가 유괴범들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유괴범들은 잘못된 유괴대상에 화를 내다가 꾀를 낸다. 더글러스 킹에게, 당신의 아들이 아니어도 몸값을- 그것도 보스턴 거래를 망칠 수 있는금액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킹은 자신의 미래와 제프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 안의 87분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만 이번 책인 <킹의 몸값>은 다른 책에 비해 분서 수사관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해 그냥 그러하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수사관의 비중이 적고 범죄자와 피범죄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즘의 과학수사니 홈즈의 뛰어난 추리 따위은 등장하지 않고 전통적인 유괴범 수사방식이 동원된다. 범인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추적하고 유과현장에서 증거를 찾지만 사실, 꽤나 지지부진하다. 별 얘기거리가 안된다.


  진짜 주인공은 87분서 수사관이 아니다. 주인공은 남의 아이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더글러스 킹과 유괴범들이다. 사실 이상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라면 킹은 몸값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지불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사업이 중요하다지만 한 사람의- 그것도 어린 아이의 목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은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는 50만달러를 내주기가 무섭다. 이길 수만 있으면 규칙은 만드는 거라고 말하는(51쪽) 초반 장면에서 이미 그의 고매함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50만달러를 유괴범들에게 주는 순간 보스턴 거래는 끝이 나고 자신은 회사에 붙어 있기는 커녕 라이벌들에 의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곧 제프의 몸값에 대비되는 것은 결국 킹 자신의 목숨값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킹의 아내 다이앤은 제프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50만달러를 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집에서 나가겠다고 주장한다. 또 유괴범 패거리(주도자인 사이, 기술자인 에디, 에디의 아내 캐시) 중 캐시는 아이를 풀어주자고 거듭 말한다. 오, 이런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다 있는가! 남의 아이에게, 또 자신들에게 돈을 가져다줄 아이에게 어찌 이리도 착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여기에는 조그마한 함정이 있다. 다이앤은 어릴 적주터 가난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유복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킹은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생이다. 다이앤에겐 그깟 50만달러지만 킹에게 그 돈은 자신과 가족을 모두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놈이다. 나는 거기서 다이앤에게 묻고 싶다. 당싱은 과연 여태까지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거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킹이 현실을 뜻한다면 다이앤은 이상을 뜻한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나도 50만달러를 당연히 건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저런 상황을 접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제프를 구출하기 위해 한 부부가 천 달러를 보내는 장면도 있다.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 제프의 몸값이 50만달러가 아닌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면 킹은 과연 거래를 수용했을까이다. 천 달러를 보내온 부부에게 그 돈은 자신들의 전부였을까 아니면 목숨과도 같은 전재산이었을까. 킹이나 그 부부나 제프는 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이리도 다르단 말안가. 여기에서부터 돈에 의한 도덕적 딜레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속물이 된 나에게(어쩌면 당신에게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다. 


  캐시 또한 은행털이는 수용하면서 유괴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참된 인간성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유괴의 결말이 결국 전기의자이기때문에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싶다. 종막에 혼자 체포된 사이는 공범을 불지 않지만 이는 그들끼리의 의리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서 '경찰도 꺾지 못한 악당'이라는 이미지로 수감자들에게 거물대접을 받을 요량이다. 절대적 선과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상황과 상충하여 헛돌고만다. 각자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작성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지만 결국엔 모두 상처만 가진 채 각자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뭐, 죄값이래봐야 결국 마음의 짐일 뿐 신경쓰지 않는다면 죄 따위야 그딴 것으로 그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