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
2015-012.
0.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베스트셀러가 계속 순위에 있을 때 유행에 편승해 얼른 읽어야 한다. 대세에 따르지 못하면 허세킹이 될 수 없지.
1. 지대넓얕은 팟캐스트에서 먼저 접했다. 1회부터는 아니고, 새해가 막 넘었을 때 페이스북에서 보고서는 구독해놨다. 대략 40회 정도인데, 주제가 미술사, 커피, 깨달음, 막 이런 거다. 뭔가 나와는 맞지 않는 주제였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으려나 살펴보다 3회가 눈에 들어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오, 안 그래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야. 그런데 조금 듣다보니 팟캐스트 주인장인 채사장은 말했다. 자기는 신자유의주를 신봉한다고. 채사장과 반대 스탠스를 가진 나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그냥 어플을 종료했다.
2. 그래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도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과연 나와 정반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의 책은 어떨까. 장하준의 명저를 반대하는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를 읽고서 역시 나와는 다른 사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처절히 깨달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한참 고민하다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고 해서 결국 펴게 되었다. 한 권으로 편안하게 즐기는 지식 여행서. 주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책 한 권에 5개의 방대한 학문을 집어넣었다니, 간단하고 편협한 내용만 있을 것 같았다.
3. 결론은 완벽한 나의 착각. 우리에게 '지적'이란 단어는 꽤나 고상한 내음을 풍긴다. 온갖 자료를 조사해서 논리로 꿰맞추고 상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그런 상상. 하지만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 전에 우선적으로 대화 자체가 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양이 필요한데, 저자는 소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전문지식이 아닌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말한다.
4. 저자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를 큰 틀로 보고 딱 두 가지로 나눈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통해 과거에 일어났던, 또 현재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단순하게 구조화한다. 물론 세계가 딱 반으로 나뉘어지지 않기에 이런 이분법은 상당히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그런 건 공부 좀 하셨던 분들에게나 어울리는 소리다. 년도에 맞춰 무슨무슨 일이 있었다고 줄줄 외기만 하는 역사, 온갖 수식이 난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경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다 나빠'라고 외치는 정치, 고루하고 지리멸렬할 것만 같은 사회와 윤리. 저자는 '경제'를 베이스로 하여 다섯 가지 학문을 큰 줄기로 묶는다. 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주제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전체적인 틀이 만들어진다. 사고의 단순화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이것이 <지대넓얕>의 최대 강점이다.
5. 단순화는 좋은데, 사실 너무 단순하다. 입문서 수준이라기보다는, 각 주제에 관심갖기 딱 좋을 정도? 지식의 강에 엄지발가락을 살짝 담근 꼴이다. 관심이 생겼으면 이제 '진짜' 입문서를 펴면 된다. 흥미를 갖게 만드는 데는 최고의 책이다. 복잡미묘해 보이는 세상이 생각보다 단순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것만으로 큰 소득이다.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의 베이스는 경제라고 생각했고, 많은 이들이 입.문.서.라고 추천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호기롭게 펼쳤으나... 어려워서 중간에 떼려치웠다. 그런 나에게 <지대넓얕>은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다만, 지식의 강도가 확 다르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다.
6.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대넓얕>을 읽고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다. 먼저 정치적 스탠스.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전에 정치성향 테스트에서 우파적 성향이 나온 걸 보고 '이 테스트는 이상해. 게다가 나랑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같은 스탠스시잖아?'라며 의문을 가진 적 있다. 무조건 우파는 나쁜 놈, 자본주의를 부수자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나는 좌파가 아니라 중도우파 정도에 위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물론 그것 또한 이 책이 설명한 수준에서이다. 책의 판단이 아닌 나의 판단으로 내 정치적 스탠스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가 더 필요할 것이다) 자본가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들여 재분배를 하자는 건 다수(시민)가 소수(자본가)에게 가하는 압제와 불평등일 수도 있다는 문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7. 마지막. 인문학이 스펙이 된 시대가 <지대넓얕>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거 아니냐는, 아주 비난조의 리뷰를 봤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면서도... 오로지 성적과 순위, 성공을 위한 공부만이 남고 제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며 세상을 알기 위한 공부와 독서는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가슴 깊숙이 먹먹하게 또아리 튼 알고 싶다는 욕구를 제대로 건드렸기에 이만큼 많이 읽히는 것은 아닐까. 참참. 팟캐스트에서는 더욱 재밌는 토의가 많으니 팟캐스트 청취를 추천한다. 재밌다.
'독서 이야기 > 독서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편 - 채사장 (한빛비즈, 2015) (0) | 2015.04.30 |
---|---|
지대넓얕 현실 너머편 밑줄 하나 (0) | 2015.04.23 |
스토너 - 존 윌리엄스 (2014, RHK) (0) | 2015.03.30 |
지대넓얕 밑줄 (0) | 2015.03.30 |
작가란 무엇인가 - 파리 리뷰 인터뷰 (다른, 2014) (0) | 2015.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