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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책 이야기

종이책 vs 전자책

by 양손잡이™ 2017. 9. 24.

어쩌다보니 다섯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중이다. 매일 이십 분씩 시간을 할애해서 조금씩 읽는다. 집에서 읽을 때는 문제가 없다. 책을 옆에 쌓아두고 읽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외출할 때다. 책을 모두 가방에 넣고 다니려면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나갈 때마다 카메라까지 등에 짊어지니 가방도 뚱뚱해져 볼품이 없을 뿐더러 온몸이 무겁다는 비명을 지른다. 안다. 최고의 해결법은 읽을 책 한 권만 가져간다, 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독서인이다.


무거움을 타파하고자 가끔 전자책 기기(이하 이북리더기)만 들고 나갈 때가 있다. 역시 가볍고 작은 게 최고라고 매번 감탄하지만 읽다보면 영 책 읽는 맛이 안 난단 말이지. 안 그래도 곧 회사 기숙사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해야 하는데 책이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다. 다 팔고 전자책으로 바꿔버릴까, 하다가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러니까, 오늘은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남겨본다.


전자책을 읽은 지는 꽤 오래 됐다. 교보문고에서 스토리K HD를 팔 때였으니까, 검색해보니 2012년이다. 신문물에 깜짝 놀란 나는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면서 냉큼 기기를 샀다. 허나 교보문고에서 산 전자책만 읽을 수 있었고,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손 쳐도 내가 직접 만든 컨텐츠나 어디선가 구한(어둠의 경로일수밖에 없다) 이펍 파일만 읽을 수 있었으니 신문물에 대한 흥미는 곧 사라졌다.


그 뒤로 알라딘과 예스24를 필두로 한 한국이퍼브에서 새 기기인 크레마 터치를 내놓는다. 알라딘이 주 서점이었기에 당연히 새 기기를 샀고, 이놈 역시 몇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서랍에 잠들고만다. 뒤이어 프론트 라이트가 달린 크레마 샤인, 교보문고의 대여 컨텐츠와 같은 이름의 SAM, 미국 아마존에서 만든 원서 전용기 킨들페화4, 카르타 패널로 만든 크레마 카르타, 리디북스 전용기인 리디 페이퍼(+보급기인 리디 페이퍼 라이트)까지, 국내 발매된 이북 리더기는 거의 써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지어 아이패드4, 아이패드미니 1,4, 아이패드 프로까지 이북 리더기로 써봤으니 전자책을 접할 수 있는 기기는 거의 사용해본 격이다.


기기 많이 쓴 게 무슨 자랑이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지. 전자책을 몇 년이나 읽어놓고 아직도 전자책에 적응하지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전자책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자책의 장점은 많다. 실물이 아니라는 점이 모든 장점이다.


실물이 아니기에 부피가 적다. 몇백권, 몇천권의 책도 SD 카드 한 장에 다 들어간다. 서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셈이다. 종이책 표지가 주는 정갈함과 심미적인 면을 빼면 실용적인 면에서는 전자책이 최고다.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기에 무게도 사라진다. 종이의 실물 무게는 단순히 텍스트와 그림의 데이터로 변환돼 메모리에 저장된다. 메모리는 아무리 많은 내용이 들어간다 해도 그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부피와 무게 감소는 책을 보관하고 이동할 때 가장 큰 장점이 된다. 실용성 하나만 생각하면 종이책은 전자책에 절대 이길 수 없다.


요새 나오는 이북 리더기는 프론트라이트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책을 볼 수 있다. 어두껌껌한 곳에 들어가면 읽지 못하는 종이책과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 옆에서 잔다고 독서등을 켜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태블릿류와 다르게 이북 리더기는 프론트라이트를 쓰기 때문에 눈부심이 덜한 편이다. (완벽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전자책은 완벽하게 개인화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작은 글씨를 보기 힘들고, 한번 찍어내면 고정적인 글자만 보여주는 종이책을 읽기에 불편하다. 그런 사람을 위해 큰글씨책이 나오지만 그 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이런 불편함을 전자책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글자 크기가 조절되기 때문이다. 글꼴이 마음에 안 든다면 글꼴 파일을 구해 바꾸기도 가능하다. 줄간격, 여백을 조절해 자기만의 책을 만들 수 있다. 실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종이책은 글씨 크기가 작고 줄간격이 좁아 불편한 면이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레이아웃을 내 입맛대로 바꿔서 읽기 편하게 만든다.


개인화는 기기 바깥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남이 모른다는 점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전자책이 그렇게 불티나게 팔린 것도 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사실 아니다…) 종이를 만드는 데 낭비되는 나무를 아낄 수도 있다.


전자책은 이렇게 장점이 많다. 부피와 무게 하나만 생각해도 당장 종이책을 다 버리고 전자책으로 바꿀 욕심이 든다. 전자책이 편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환갑에 가까우신 우리 엄마도 알 정도다. 그런데 나는 몇 년간 전자책에 적응하지 못했을까?


전자책의 장점은 곧 종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단점이 주는 익숙함을 버리기 힘들어서 여태까지 종이책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전자책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면, 몇 전자책 애호가들은 어차피 같은 텍스트인데 내용에만 집중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냐고 답변한다. 전자책을 막 접했을 때 내 의견이기도 하다. 어차피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지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니고 책의 본질, 즉 텍스트에 있지 않은가? 전달방식이 바뀌어도 내용이 같으면 똑같은 책이 아닐까?


저 질문에 적어도 내 의견을 말해보자면, 텍스트는 책의 본질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책은 단순히 텍스트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 무게, 표지 촉감, 종이 질감, 책 냄새,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모두 책의 요소다. 책 읽기는 단순히 시작적인 행위가 아니다. 오감을 모두 동원해서 지식과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에 가깝다. 부피와 무게가 종이책의 단점이자 장점이 되는 것이다.


앞서 전자책의 장점으로 뛰어난 개인화를 꼽았다. 하지만 편집자가 글꼴과 글자 크기, 줄간격, 여백을 끝없이 고민해서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하면 개인화는 책의 한 요소인 편집의 맛을 완벽하게 부숴버리는 큰 단점이 되기도 한다. 출판사의 고유한 편집 스타일이 종이책의 장점이다.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이북 리더기가 주는 이질감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특히 촉감에서 그러한데, 내가 책을 읽는 건지 기계를 만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요새는 터치 스크린 옆에 물리키를 달아 촉감적인 면을 강조하는 기기도 나오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다.



삼십 년을 무거운 책을 들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들었으니 전자책에 쉬이 적응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뇌의 가소성이 사라져버린 걸까. 아무리 무거워도 종이책을 들어야 그 무게에서 오는 안정감에 마음이 놓인다. 어린 애들은 날 때부터 모티너와 친했기에 전자책에 더 친숙할 거라고 많은 조사가 예상한다.


다 전자책으로 바꾸려고 해도 막상 종이책을 들면 좋아 죽으니 어쩔 수 없다. 무겁고 불편하더라도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미 뇌는 실물에 적응이 돼 취향을 바꾸기는 힘들다. 노력은 하겠지만 글쎄, 이사할 때마다 힘들어도, 분기마다 책장정리에 기를 써도, 어떤 책을 남기고 보낼지 고민해도, 종이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종이책 알라븅. 



쓰다보니 전자책의 장점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말주변이 없어 종이책을 충분히 변호하지 못한 건 아닌가, 침대 위에 널부러진 많은 종이책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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