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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김치 공장 블루스 - 김원재 (알에이치케이코리아, 2023)

by 양손잡이™ 2023. 3. 27.

1. 저자는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10년을 일했다. 일반 회사원도 아니고 카피라이터니, 자기만의 능력이 있을테니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가 회사를 나간 후 선택한 직장은 무려 김치 공장이다. 힙한 동네 이태원에서 일하던 그는, 이제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어노는 파주’읍’ 부곡’리’로 출근한다.

 

 

2. 대기업에서 김치 공장이라니 각오가 대단하네. 라고 생각했건만 웬걸, 어머니가 사장님이란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공장 후계자가 되기 위해 낙하산 취업을 한 것이다. 사원, 과장을 뛰어 넘어 바로 부사장으로 말이다! 이 부분에서 한번 갸우뚱 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의문은 풀리게 됐으니…

 

 

3. 그 사연은 책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23년, RHK 출판사에서 발매된 핫한 에세이, 절찬리 판매 중!

 

 

4. 재벌 2세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경영수업을 하듯이, 저자도 부사장 직급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저 아래 직급의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자기 손으로 사업을 일궈낸 어머니의 경험을 허투루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침에 현장에서 절임실과 세척실을 연결하는 작은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배추를 건진다. 하루에 오이 3천개, 열무 7백단을 자르고 썬다. 8년 동안 16만 킬로를 뛴 작은 아반떼로 배달을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바닥에서 열심히 구르는 중이다.

 

 

5. 힘든 업무에도 저자를 지탱해주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 부장, 팀장들과, 외국인 현장 근로자의 이야기들. 사장님과 오랜 시간 회사를 함께 일궈온 직원들의 이야기는 소소하면서도 참 특별하다. 특히 기숙사 친구들(저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이와 같이 칭한다)의 에피소드가 참 재밌다. 일상적으로 겪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반제품들을 저장하는 냉장창고는 귀여움의 각축장이다. 외국인 작업자들이 써둔 이름표들 때문이다. 까르상이 붙여둔 특선 겉절이 양념 이름표에는 ‘특산 같자리 양념’이라 쓰여 있고, 바타는 보쌈 양념에 반듯한 글씨로 ‘보삼 얌념’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가나는 포장지 박스에 ‘너나없이 잘합ㅅ다’라고 써놨다. 수딥은 한국말을 잘하면서도 휴가계를 낼 때는 꼭 사유에 ‘아프다’라고 적어서, 먹고살이의 고됨을 강조하는 것 같다.  _44,45쪽

 

다소 서툰 한국어마저 귀엽고, 수딥의 고됨의 강조는 정말, 외국인의 한국어 언어 구사 능력을 떠나서 그냥 감각이 좋아 보인다.

 

공장에서 양념을 담당하는, 저자보다 네 살 적은 바타는 저자에게 누나라고 칭한다. 외국인들은 누나를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을 부르는 통칭’으로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럴싸한 이론. 그런데 웬걸, 스물 여섯의 품질팀 대리는 현장에서 이모라고 불렸다면서 한탄한다. 하하, 빵 터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6. 저자에게 힘을 주는 다른 존재는, 사장님인 자신의 어머니다. 공장을 힘겹게 성장시킨 엄마의 이야기는 저자를 시큰하게 만든다. 빚도 지고, 잘못된 결정을 하기도 하면서도 뚝심있게 자리를 지켜온 사장님. 제주도 출신인 엄마는 열네 살에 출도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공장을 비우지 못하고 절박하게 공장을 운영했다(258쪽). 엄마의 청춘과 인생이 모두 담긴 공장을 이어 받는 저자의 마음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사장님과의 인터뷰에서. 엄마 왈,)
나는, 아주 멋지게 살 거야. 앞으로 더 멋지게 살 거야. 영어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더 많은 사람들 도와주면서 정말 멋지게 살아볼 거야.

또 말을 멈추고

원재야, 너도 멋지게 살아.

 

 

7. 읽는 내내 흐뭇했다. 우악스러우면서도 반듯한 사장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때론 달리는 차 안에서 울기도 하는 부사장(저자), 공장과 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버무려져 맛깔난 글이 완성됐다. 그들의 정성이 잘 발효되고 숙성되어 맛있는 김치 같은 시간이 펼쳐지기를 기원해본다.

 

 

8. 나는 김치를 사먹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만드는 김치라면 한번 먹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저자가 다니는 업체명을 이 글에 남길 수는 없겠고, 책을 들춰보시면 나오니까 한번 열어보시길.

 
김치 공장 블루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우리의 귓전을 때리는 이 〈김치 주제가〉의 가사처럼, 김치 없는 한국인의 밥상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배추김치는 물론이거니와 계절마다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총각김치, 종류가 다채롭게 등장하는 우리네 식탁이지만… 정작 김치를 만드는 이들의 하루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여기,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10년 근속 포상을 눈앞에 두고, 김치 공장 새내기를 자처한 이가 있다. 대체로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에서 궁둥이 붙일 틈 없는 현장직으로의 전환은, 게다가 유망한 것도 아닌 케케묵은 산업에 뛰어든 그의 일상은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방불케 한다. 구불구불 숲길을 지나 출근한 김치 공장 사람들은 세척실로 쏟아져 나오는 배추를 건져 종일 서서 속을 넣고, 하루에 오이만 3천 개를 썰다가 손가락을 못 펴는 지경에 이르고, 1년 전에 구매한 김치가 이상하다며 항의하는 황당한 고객을 응대하며, 밀려드는 일을 하다가도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홈쇼핑 방송을 위해 달려가는…. 『김치 공장 블루스』는 정신없이 굴러가는 하루에도 자기만 알기 아까운 순간들을 포착하고, 순간마다 배움의 기회로 삼는 남다른 근성을 지닌 저자가 쓴 김치 공장살이의 기록이다. 고춧가루 팍팍 무친 듯 눈물 나게 맵다가도, 절인 배추 한 쪽 베어 문 듯 짭조름하고, 동치미 국물 들이켠 듯 속 시원한 김치 공장의 희로애락이 담겼다. 한편, 이 책은 저자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먼 타지에서도 자부심을 지키며 일하는 외국인 친구들, 오랜 시간 공장에 몸 바쳐 온 선배들, 자신의 아들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보내며, 저자는 그들과 연대하기를 굳게 다짐한다.
저자
김원재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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