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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루저들의 반란 - 레벌루션 No. 3 (가네시로 가즈키)

by 양손잡이™ 2011. 10. 12.
레벌루션 No.3 - 8점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북폴리오


  한참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했었습니다. 여자보다 예쁜 이준기가 등장했고 저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에 그가 주연으로 나온 <플라이 대디>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요. 개봉 당시 나름 호평이 있었던 영화였는데다 말이죠. 어쩌면 그때부터 영화보기를 싫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이상한가?

  하여튼, 영화 <플라이 대디>의 원작 소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싫어하니까 자연스레 원작소설도, 그 작가도 싫어졌어요. 게다가 작가의 다른 소설, <Go>는 뭔가 제목도 마음에 안 들었었죠. 뭐, 군대에 있을 때여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땐 <냉정과 열정 사이>도 엄청 재미가 없었다고.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를 싫어하게 되었지만. 쿨럭.

  사실 이번 <레벌루션 No. 3>를 보게 된 계기는 신작 <레벌루션 No. 0> 때문입니다. 나는 모르는 '더 좀비스'를 많은 사람들이 오오오, 하며 기대하는데 욕심쟁이인 제가 그들에게 뒤쳐질 수 없지 않습니까. 도서관에 신청한 넘버 제로가 오자마자 넘버 쓰리와 함께 빌렸습니다. 신간을 두 권이나 빌렸기 때문에 얼른 읽으려 했죠.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잠도 못 자고 다 읽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레벌루션 No. 3>에는 '더 좀비스'라는 집단이 있습니다. 사실 좀비라는 단어 때문에 이게 무슨 장르소설이었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전혀 아니었죠. 아주 형편없는 남고의 학생들이었습니다. 학교의 평균 학력이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 수준밖에 안되는, 요컨대 뇌사 상태인 그들은 학력사회에서 '살아 있는 시체'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12쪽) 라네요. 이 소설은 이런 '더 좀비스' 47명의 사소한 모험담입니다.

  자신보다 더 잘난 유전자를 만나기 위해 일류 여고의 학원제에 침입(?)하려고 애를 쓰고, 친구의 묘가 있는 오키나와로 가기 위해서 알바를 하고, 여대생의 보디가드를 하면서 스토커를 잡고, 참 재밌는 시절을 보내는 그들입니다.

  헤헤헤, 알 만하군. 순신은, 늘 다수 측이 이기게 돼 있어, 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서 다른 형태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127쪽)


  사회는 똑똑한 놈들이 지배합니다. 어쩔 수 없는 진리입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라온 그들이 우리 가장 보통의 존재의 어깨와 머리를 밟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죠.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무조건적인 저항? 옥수수와 금을 바꿔주지 않으면 일어날 유혈사태? 음이탈이 났다고 덜컥 숨어버리는 사회로부터의 잠적? 작가는 Never no라고 말합니다. 달리면 되는 겁니다.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윗대가리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기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숨이 차도록 달려도 그들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글쎄요, 저는 물리적인 쪽이 아니라 심리적인 쪽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달려서 콘크리트 벽을 뚫는 게 아니라 마음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만의 인생의 길을 뛰는 겁니다. 심장이 터질듯 뛰면서 나 자신을 느끼고 언젠가는 온몸을 관통할 황홀감이 찾아오겠죠. 살면서 느끼는 러너스 하이.

  멤버들이 또, 헤헤헤, 하고 웃었다. 나와 순신도 덩달아 헤헤헤, 하고 웃었다. 분위기가 일변했다.
  헤헤헤, 떠들썩하고 신났다. (117쪽)


  작가는 재일동포입니다. 크면서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을까요. 그래서 보통 재일동포의 문학은 상당히 어둡다고 합니다. 고독과 상처로 점철된 글들.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문학 특유의 경쾌한 문체를 사용하고 유머감각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도, 아무리 경찰한테 쫓기고 있어도,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유쾌하게 헤헤헤, 하고 웃을 수 있는 인생에 있어 무한긍정. 힘들고 지친 요즘에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요?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뚱해있지 말고 웃읍시다, 모두. 사회는 뭐 같아도 옆에 항상 같이 있어주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안 될 것 같으면... 어쩔 수 있나요. 힘내세요.

  "너희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나?" (23쪽)


  (2011년 10월 10일 ~ 10월 11일,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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