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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역시 박민규 작가야! - 더블 side B (박민규)

by 양손잡이™ 2012. 1. 16.
더블 side B - 10점
박민규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006.

  한국 문단의 이단아, 그러면서 아름다운 유니크를 자랑하는 작가, 제가 가장 좋아하지만 아직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작가, 박민규 작가의 두 번째이자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작품집입니다. 그 사이 장편 2편, 단편 24편을 썼는데 <더블>은 그 중 단편 18편을 모은 책입니다.

  <카스테라>를 읽었을 때 그 느낌은 어찌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검색해보니 05년도에 출간되었네요. 친구가 희한한 책을 보고 있길래 저도 호기심에 봤었죠. 처음에는 이게 뭐야, 했다가 두 번째에는 오오, 세 번째에는 이 작가의 팬이 되었습니다. 표제작 '카스테라'(작품집이라 낫표와 겹낫표를 써야 하지만 귀찮으므로 그냥 쓰겠습니다)는 읽을 때마다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현재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빼고는 작가의 출간된 작품은 모두 읽었습니다. 이 작가, 단편에선 좀 희한해도 장편만 가면 펄펄 날더군요.

  <더블>의 첫 번째 권인 side A는 작년에 읽었습니다. 계속 장편소설만 읽다가 오랜만에 접한 단편이었죠. 그동안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는 글만 읽어서 그런지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글들뿐이었습니다. 내가 박민규를 따라가지 못하느냐 박민규가 작품의 방향을 바꾼 것이냐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 별 생각없던 그때, 그냥 작품의 불가해성의 원인을 후자라고 해버렸습니다. 결국 멍청한 건 저였는데.

  갑자기 읽고 싶다, 고 머리에 떠오른 책이었습니다. 사실 1월 들어서 제대로 된 소설은 읽지 못했거든요. 사랑에 대한 에세이(뭔지 모르겠습니다), 작법서, 역사서, 마음 치유서(이건 뭐지) 등을 읽느라 잠시 이야기에 대한 감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작법서에서 말하는, 통칭 '잘 먹히는 소설', '바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든 거지요. 파괴자, 박민규.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기본을 충실히 하라, 입니다. 기초를 탄탄히 다진 후 기초를 파괴하고 자신만의 문체를 쌓아올려라. 그렇기에 글쓰기의 기초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엉망으로 쓴 글을 보며 혀를 끌끌, 차왔지요. 저도 글은 정말 못 쓰지만 무조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며 우겨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민규의 작품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박민규 작가를 처음 접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슨 이런 괴짜가 다 있어? 말줄임표 …도 ...로 쓰지, 서술과 대화는 한 곳에 뭉태기로 쓰지, 남발하지 말라는 쉼표는 문장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척 보기에도 엉망인데 글을 읽다 보면 인물들도 야리꾸리하거든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책을 쓰고 이상하게 환호를 받네, 하며 관심을 꺼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건 마치, '나는 이렇게도 쓸 수 있다'하며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낮잠'에서는 늙어가는 데 생기는 회한을, 정말 아무 상황이 아닌데도 쓸쓸하고 고독스럽게 표현합니다. 그러면서도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그러니까 화성까지 가는 방법은 네비를 보면 됩니다처럼, 써재낀다 이거죠. '용용용용'(수다스러울 절)에서는 무협의 요소를 가져오면서 '아스피린'에선 약간 SF적 요소까지. 아직 문단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많이 읽어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요, 장르문학적 요소와, 발칙한 상상력을 이리도 멋있게 일반문학으로 가져온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치보이스'나 '별', '아치' 같은, 다른 기존 작가들이 다루었을 법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면서도 나 박민규올시다 하고 존재감 팍팍 드러내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그의 파괴적인 문법에서도 '박민규스러움'을 알아챌 수 있지만 묘사나 서술에서도 '스러움'이 보입니다. 엄청납니다. 뜬금없어 실소를 자아내고 한편으론 너무 우스운,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요.

  나는 마리아 샤라포바의 서브 동작과 괴성을 흉내냈는데 반응이 정말 심상치 않았다. 네 명의 여자애들의 비너스 윌리엄스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비치 보이스')

  (상공에 괴비행체가 떠 있는 상황) 여느 때처럼 각자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 황보의 발표가 이어졌다. 긍러므로 제가 잡은 컨셉은 프리미엄입니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 퍼센트, 당신을 위한 요실금팬티... 하는데 ('아스피린')


  사실 제대로 이해한 작품은 없습니다. 그냥 어렴풋이, 이런 뜻으로 글을 쓴 건 아닐까 추측만 했지요. 하지만 SES 언냐들이 말했지요, 저스트 쀨링~. 뭐 있나요, 그냥 글 읽고 좋다는 느낌 받았으면 된 거지. 허섭한 글 쓰다 보니 이 책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냥 작가에 대한 저의 찬양론만 잔뜩 있군요. 감상문 쓰려고 했는데 슬프다. 흑흑. 박민규 작가의 글 읽을 때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할 점은, 작품을 읽자마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파괴적인 요소도 그대로 가져오면서요. 이 점 조심하세요. 조심 조심 완전 조심.

  (2012년 1월 15일 ~ 1월 16일,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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