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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책 이야기

독서 역사에 변곡점을 찍은 책들

by 양손잡이™ 2013. 5. 17.
책인시공 - 6점
정수복 지음/문학동네



  정수복의 <책인시공>을 읽으면서, 문득 내 책읽기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노력하는데,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책과 상당히 가까이 살았다. 어머니가 학창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셔서 아파트 베란다 책장에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 아마 대학교 졸업까지 이걸 다 읽었다면 지금 가진 책 읽기에 대한 부담을 절반 이상으로 줄였을 것이다. 재밌게도, 그 많은 작품 중에 상당히 자극적인 것만 읽었는데 제목은 바로 <보바리 부인>과 <롤리타>였다. 남자의 본능이 발동한 걸까, 방 한구석에 몸을 잔뜩 수그리고는 몰래 보았다. 어머니는 그 꼴이 수상쩍었는지 내 손에 든 책을 보시고는 기겁을 하시며 뺏으셨다. 책 읽기가 어때서요! 항변했지만 사실 속으론 매우 찔렸다. 거시기하고 거시기한 장면만 골라봤기 때문이다. 아하, 부끄럽고만.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책을 본 기억도 있다. 지금 봐도 이해하지 못할 책들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버스에서 꼴같잖게 <데미안>을 보며 집에 간 적이 있다. 10년이 흘러 대학교 4학년생이 되어서야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그땐 이 책을 왜 읽었을까. 기억에 남는 거라곤 아프락사스밖에 없으면서 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머리에 남았다. 돼지(별명이 돼지였던 걸로 기억한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장면. 아마 이 사건 이후로 두 집단이 확 갈라선 걸로 기억한다. 70년대에 출판된 책이어서 종이도 아주 노랗고 글씨체도 불친절했지만 그 당시의 미화된 기억으론 빠져 읽었다. 다시 읽으려고 작년에 사두었는데 책장 깊숙한 곳에서 곰팡이와 친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땐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객기를 부리며 <군주론>과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등학생 땐 사랑이란 감정은 쥐뿔도 모르면서 <제인 에어>와 <테스>,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고전으로만 치자면 외려 대학생 시절보다 중고등 학창시절에 더 읽은 것 같다. 물론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 때문에 죄다 리-리딩을 해야 하지만(사실 내용을 까먹어서 그렇다), 어릴 때부터 착실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다.


  위까지는 그냥 척에 불과하고, 아래로는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책에 대해 간단히 써보려 한다. 내 책 읽기 역사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찍은 책들이다.



 1. 글 읽기의 즐거움. 괴도 루팡 전집 (모리스 르블랑)


기암성 - 10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내 책 읽기는 만화책부터 시작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외삼촌이 사주신 <드래곤볼 1>이다. <12지 전사>는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그림 세계에서 글자 세계로 인도해준 사람이 바로 괴도 루팡이다. 셜록 홈즈와 라이벌로 설정된 루팡은 못 훔치는 게 없는 대도이면서 보물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결국 차지하는 천재적인 탐정과 같다. 난 아직도 셜록 홈즈가 재미없는데, 초등학생 때 읽었던 루팡이 방어선을 철저히 구축하고 있다. 내 머리 속 홈즈는 강박증에 추리만 하는 아주 심심한 인물에 착해빠진 성격으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루팡은 홈즈와 '뭔가'가 다른다. (아쉽게도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루팡을 본 이후로는 다시 보지 않아 뚜렷한 기억이 남지 않았다) 미스터리와 모험, 추리가 한 데 섞여 글 읽는 재미를 준 루팡이 되겠다.



2. 판타지에 첫 발을 내딛다. 성검전설 (홍정호)


성검전설 1 - 10점
홍성호 지음/자음과모음


  따지고보면 루팡도 장르문학에 속하는 추리물이다. 결국 어릴 때부터 모험심 가득한 장르문학에 관심을 보인 것인데, 진짜 장르문학에 빠지게 된 계기는 판타지소설이다. 게임 '성검전설'과 동명인 이 소설은, 내용이...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판타지에 미쳐 대여점에 돈을 얼마나 바친지 모르겠다. 판타지 덕에 도서관 대출권수 좀 늘었으려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검전설>은 내게 두 가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첫째, 본격적으로 장르문학에 입문하게 된 작품이다. 한국형 판타지라는 다소 모호한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책 덕에 판타지 장르에 대한 어설픈 기초를 쌓았고 <드래곤 라자>와 <세월의 돌>로 판타지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이런 작품은 '텍스트 읽기 그 자체'에 재미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바탕으로 읽기에서 해석하기와 이해하기의 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소설 읽기의 바탕이 된 것이다. 둘째, 글쓰기를 시도했다. 내 창작의 처음은 일기쓰기였겠지만 이 세상에 없는 일을 완전히 가상으로 쓴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게임 '성검전설'과 전민희의 걸작 소설 <세월의 돌>을 짬뽕하여 열심히 창작(!)에 매진했지만 열정이 부족해서 금세 관뒀다. 내가 글만 썼다 하면 대박이 날 거라는, 초심자의 어처구니 없는 망상은 대학교 입학 전까지 계속 됐다. <성검전설>은 글쓰기의 원초적 밑받침이 틀림없지만, 헛된 망상과 자존심이 발아한 카오스적 씨앗과도 같다.



3. 고전의 향기에 조금씩 취하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 10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민음사


  문제집 살 돈을 몰래몰래 꼬불쳐서 순전히 내 노력으로 산 첫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다. 이 책은 내게 악몽과도 같다. 출간되자마자 하도 광고를 때려대고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이 많아서 큰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는데 웬걸, 내겐 전혀 맞지 않는 책이었다. 그 뒤 파울로 코엘료의 모든 책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남에게 선물로 사준 적은 있어도 절대 내가 읽진 않는다. 두 번째로 산 책이 <위대한 개츠비>다. 동생과 함께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씩 사오라고 어머니가 돈을 주셨다.(웬일로? 어머니는 책 사는 걸 싫어하신다. 도서관이라는 국가 최대의 자선사업기관이 있는데 뭐하러 책을 사냐고 하신다) 동생이 뭘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나는 고민 끝에 이 책을 골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산 '03년 당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신간으로 서점 매대에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제목도 뭔가 멋져보여서 냉큼 집었다. 그리고 이 책은, 학창시절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으로 남는다. 책을 샀을 당시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엔 인물과 사건에, 다음엔 배경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요즘 영화 개봉 때문에 한참 떠들썩해 민음사판이 아닌 문학동네판, 열린책들판으로 다시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완벽에 가까운 책이다. 대사, 인물, 사건, 묘사, 배경, 뭐 하나 빠질 데 없는 걸작이다. 1920년대를 살던 미국인이 아니어서 그때의 미국인 심정은 모르지만 배경적 지식 없이도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출판된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아 고전이라 부르기 민망하지만 이것도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 피츠제럴드 덕분에 고전이 무조건 지루하진 않다는 걸 알았다.



4. 이상한 소설을 읽다. 진술 (하일지)


진술 - 10점
하일지 지음/문학과지성사


  고등학생 때 동아리 활동에서 잘한 건 농구동아리에 들어간 것이고, 아쉬운 건 도서동아리에 들지 않은 것이다. (1인 1개 동아리였으므로 참으로 모순적이다) 독서동아리는 도서관을 관리했다. 새책이 들어오면 서가에 꽂고 식사시간마다 독서실 당번을 해야 했지만 책에 파묻혀 살 수 있는 점이 장점이었다. 놀고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생활이란!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도서관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아마 도서동아리와 도서관 관계자를 제외하고 도서관에 가장 많이 들른 사람이 아닐까, 헛된 자부심을 부려본다. 여튼, 도서관을 설렁거리면서 낯선 책을 많이 봤다. 그 중 하나가 하일지의 <진술>이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부인 살해혐의로 체포된 남자의 남자의 진술로 진행된다. 온통 독백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게 큰 충격과도 같았다. 학교에서 배운 소설이나 여태껏 읽었던 소설은 모두 서술과 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혹 대화 없이 서술만 가득한 소설이 있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보니 이런 소설이 외국에 꽤 많더라) 그렇다고 내용이 어렵더냐, 그것도 아니다. 남자의 독백으로만 취조실의 현장감, 자신의 행동, 과거에서 현재까지 심리변화까지 완벽하게 담아낸다. <진술>은 내게 새로운 형식의 글과 진짜 '소설'을 읽는 재미를 주었다. 부키에서 펴낸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에서 장석주 시인이 이 책을 소개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희열에 휩싸였다.



  전역 후 2010년부터 약 45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정작 머리에 남는 책은 거의 없다. 그저 텍스트 읽기에 치중해 책 느끼려는 노력을 안 한 건 아닐까. 외려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이 머리에 각인된 아이러니한 상황. 내 인생에 방점을 찍는 책을 언제 만날 수 있을런지, 오늘도 수많은 책에 파묻혀 고뇌하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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