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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내 마음 사용 설명서 - 문제는 무기력이다 (박경숙)

by 양손잡이™ 2013. 6. 20.
문제는 무기력이다 - 7점
박경숙 지음/와이즈베리



057.


· 최근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고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 퇴근 시간만 기다려진다.

·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

· 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 직업에 장래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정당한 대우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


  프랭크 미너스 박사가 던진 24가지 질문 중 일부이다. 24개 질문 중 12개 이상이면 무기력증에 해당한다고 한다. 객관성이 다소 의심스럽지만 내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 어느 정도 신뢰가 간다. 나는 무려 18개에 예라고 대답했다.


  요새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회사 출입문에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히고 그때부터 졸리기 시작한다. 매일 일이 거기서 거기 같고 발전이 없다. 앞으로 가다가 미끄러져 제자리로 온다면 노력한다는 느낌이라도 들텐데 그냥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일을 열심히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회사에 있음으로써 인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돈만 보며 심심한 삶을 사는 것인가.


  참 다행인 것은(어쩌면 불행하기도 하다) 회의감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장에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답은 똑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 악물고 돈을 번다, 지금 회사를 나간대도 지금만큼 월급을 줄 회사를 찾기 힘들다, 그냥 여기가 싫다…. 단 한명도 자신의 일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가까운 주변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2011년 잡코리아가 직장인 526명을 대상으로 업무에 대한 의욕을 잃거나 회의를 느끼는 '직장생활 무기력 증후군'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중 90.3%가 무기력 증후군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또는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즉, 무기력은 자발성과 의욕이 상실된 상태이다.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고 모든 순간에 자신을 믿지 못하며 마음부터 시작해 몸이 아프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기도 한다. 이러다보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우 살아내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기력 원인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온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경우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기에 인지과학과 심리학에서 이것과 관련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은 학습된 무기력 모델이다. 동물학대 논란이 있었던 학습된 무기력 실험은 개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고통의 수렁에 서서히 빠진다.


  회사원이 무기력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은 그냥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전에 읽은 <인생학교: 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회사원으로서 하루의 1/3은 고스란히 회사에 있어야 한다. 회사생활을 30년이라고 가정하면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을 회사와 함께한다. 그런데 나와 회사일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그때부터 괴리감이 들기 시작한다. 많은 세월을 바쳤는데 정작 저기 높으신 분 배만 불리고 나는 몸만 축내고. 취미가 일로 변했을 때 사람은 좌절하지만, 일이 그냥 '일'일 경우 더더욱 힘든 법이다.


  또한 바버라 에런크라이가 <긍정의 배신>에서 말했듯이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가 때로는 정신건강에 독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재밌게도 모두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특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음에는 특사로 선발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부활절을 기다린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다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자신이 절대 석방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서서히 죽어간다. 물론 인생에 대해 희망을 가지면서 동시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함을 말한다. 이는 이상주의자에게 닥치는 무기력증과 상당히 흡사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발아래를 보지 않고 계속 이상만 추구하며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추구만 하는 사람은 높은 이상의 벽 때문에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기력을 어떻게 헤어나올 것인가. 인간을 움직이는 네 개의 엔진이 있는데 인지, 동기, 정서, 행동이다. 무기력은 인지와 동기, 정서가 삐걱댈 때 나타난다. 즉, 무기력은 단순히 행동하지 못하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어서 벗어나려면 세 가지 엔진을 모두 손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진짜 의미를 찾고 자존감을 높이며 타인과 환경을 모두 용서해보려는 노력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무기력의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실제로 10년 넘게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가 이겨낸 저자 박경숙은 무기력증을 인지심리학 측면에서 자세히 다룸으로써 무기력증을 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다만 책날개에도 쓰였듯이, 동시에 자전적 자기계발서다. 심리학 도서로서 무기력증의 현상과 원인을 다양하게 보여준 것은 좋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무기력 회복법을 여타의 자기계발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룬 것이 아쉽다. 그래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육체든 심리든 치료의 가장 첫 단계는 원인파악이다. 그런 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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