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반하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정반대로, 책을 펴면 상당히 평범한 내용으로 차있다. 그때서야 부제('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가 눈에 띈다. 그랬다. 이 책은 평범한 심리학 내용으로 시작한다. 제목과는 달리 나에게 큰 깨임을 줄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진실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제노비스 사건에서 다수 안에서의 방관자 역할을 자처하는 대중을 말한다. 밀그램의 실험에서는 복종에 취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또한 '도덕적'이라는 단어는 자기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는 다수 안에서 튀지 않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유혹은 나로 하여금 타인의 말에 더 잘 복종하게 만든다. 결국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어떤 집단과 상황에 있느냐가 개인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굉장히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조차도 -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사람들마저도 말이다! - 어쩔 수 없이 공동선을 위해 일했다는 생각한다. 만약 그것을 거부한다면 자신의 존립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2011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책의 전반부에 배치된 심리학 부분은 다른 책들에서 이미 본 내용이고 후반부의 '타인과 사회적 도덕성' 부분 또한 어느정도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책의 제목만큼은 충격적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다만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나'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건진 것을 그나마 위안삼을 수 있겠다. 때론 과감히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대로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참, 수많은 심리학 실험의 보고라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발췌문은 아래 첨부한다. 전자책으로 읽어 쪽수는 없다.
"이 책의 요지 중 하나는 우리가 ‘선과 악’을 ‘좋고 나쁨’과 동일시하고 타인의 행동이 사회적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는지만 볼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가 많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찬사와 비난을 늘어놓는다. 개인이나 집단을 신성시하든가, 사악하게 보든가 둘 중 하나다.[5] 우리는 도덕적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모방 혹은 피나는 노력과 희생을 계속한다. 그러한 도덕적 열망은 우리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에 잘 편입되고 싶은 바람을 나타낸다.[6]"
"자기 조의 성과가 높게 나타날수록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컸다. 반대로 자기 조의 성과가 낮을 때에는 그 이유가 자기가 아니라 다른 조원에게 있다고 보았다. ‘평균’에 겨우 머물 때에는 자기 짝에게 문제가 있는데 자기가 잘해서 그나마 중간이라도 간 거라고 생각했다.[47]"
"나는 평균 이상일 것이라는 착각"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수많은 연구 결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나는 남들보다 편견이 적고 공정하며,[67] 연로한 부모를 다른 형제자매에 비해 잘 보살피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68]"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거울 앞에 앉기를 꺼렸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자의식이 강화되면 기분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집단 속에서는 자의식이 약화되고 평소의 개인적 신념과 모순되는 행동을 저지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탈개체성(개인적 정체성의 약화)과 집단이 가져오는 익명성에 근거한다. 탈개체성의 정도는 집단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집단의 구성원 밀도가 높을수록 폭력 성향은 더 커지는 편이다. 그래서 탈개체성이 심할수록 과격한 폭력이 나타난다. "
"이러한 결과들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서 난파당한 아이들이 폭력이 난무하는 원시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중에서도 잭이라는 아이는 얼굴에 분장을 한 이후로 모든 금기를 깨뜨린다. “잭은 한쪽 뺨과 눈가를 하얗게 칠하고 다른 쪽은 붉은색으로 칠한 뒤, 오른쪽 눈에서부터 왼쪽 턱까지 시커먼 선을 그었다.”"
"때로는 타인의 존재가 거울처럼 작용해서 특정 상황에서 규범을 강하게 환기시키기도 한다. 우리의 도덕적 자아는 사회적 자아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집단은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요, 그러한 도덕성이 실현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인간은 긴밀한 감시 아래서만 도덕적일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가설을 살펴보자."
"어떤 연구에 따르면 조깅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보다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열심히 달린다고 한다.[4] 또 다른 연구에서는 헬스클럽에서도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령을 더 열심히 들어올린다고 밝혔다.[5] 위생수칙이라는 측면에서도 공중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볼일을 보고 나서 손을 씻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6]"
나에게
"도덕이란 자기 내면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된 게 아닐까? 모 유머 작가는 양심이 ‘누가 보면 어떡해!’라는 내면의 속삭임이라고 하기도 했다"
"어느 사회집단의 기본적 규제 수단이 강요와 위협이라면 그 집단은 오래가지 못한다. 억압적 통제는 대개 사회의 권위가 바닥을 쳤을 때 나온다. 규칙을 존중하는 마음은 감시에 대한 두려움보다 소속감과 자발적 동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살펴보았듯이, 때로는 인간 행동을 ‘사회적 통제’라는 시선에서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수’가 깡패다! 우리가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집단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문제될 만한데도 따돌림을 피하기 위해 그 입장에 묻어가곤 한다."
"한 개인의 범죄지수와, 그와 가장 친한 친구들의 범죄지수는 함께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초록은 동색’이라는 싸잡아 묶기로 환원해서 다룰 수 없다. 간단한 예로 필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아이 옆에 앉았던 아이는 그다음 시험에서 자기도 부정행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이건 거짓말을 잘하거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을 사귈 확률이 높다는 사실과 별개의 문제다.[5]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오래전, 1920년대에 한 연구 팀이 11000명 이상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에서의 부정행위에 대해 조사하고 확인한 것이다. 조사 결과, 정직이라는 규범은 학급별로 매우 큰 차이를 보였으며 어떤 반 학생들은 다른 반 학생들보다 유독 부정행위가 많았다.[6]"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실제로는 결정적 이유를 밝혀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유를 생각하느라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공정한 세상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실험 상황에서 피해자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밀그램은 그 실험에 대해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책임은 실수를 범해서 처벌을 자초한 학생에게 떠넘겨진다. 그 학생은 이런 실험에 자원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당하고, 더 고약하게는 아둔하고 고집이 세다고 비난을 당한다. … 이때의 심리 기제는 명백하다. 그 학생은 ‘딱한 녀석’이지만 자업자득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의 판단에서 오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행동이 어떻게 해석될까에 그토록 연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사회적 존재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러한 존재로서 지각되는 것도 중요하고, 집단 속에서 형성된 자기 이미지를 끈질기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다."
"선행을 칭찬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때에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관대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더 공정하게 돈을 나눈다.[23] 사람들은 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더욱 열심히 다른 사람을 돕는다.[24] 반면에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우리의 참을성은 쉽게 바닥난다."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유혹"
"괴물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 프리모 레비[1] "
"밀그램은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보다 그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느냐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이러한 두 가지 관찰은 성격의 특정한 면들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공격성, 항정신성 약물 남용, 위험한 성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수준과 야심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확인했다.[26]"
"요즘은 ‘친절한 간수’ 인간형이 인기다. 조너선 리텔Jonathan Littell의 공쿠르상 수상작 『착한 여신들』만 봐도 그렇다. 철학자 라코스트Lacoste는 간수의 전형적 묘사에 반발하며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한 묘사를 전개한다. “그는 점잖은 데다가 교육을 잘 받은 탓에 민감하고 싹싹하며 양심적이고 재치도 있다. 예의가 바르고 자기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예의바르고 가정을 잘 건사하며 고결한 정치적 신념과 유순한 태도를 갖춘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신중하라. 특히 그 사람이 책을 많이 읽고, 피"
"실제로 굉장히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조차 감히 자기 딴에는 좋은 일을 하려고 그랬다고 고백한다. 101예비경찰부대의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이들만 쏘려고 노력했습니다. …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었지요. 그런데 동료가 어머니를 죽이기에 어차피 아이는 엄마 없이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아이를 죽였습니다. 살아갈 수도 없는 애들이니 빨리 고통이나 줄여주자는 생각으로 제 양심을 달랬던 것입니다.”[4"
앞의 독재자-공동선 이야기오 동일한 맥락이다
"유감스럽게도 뿌리 깊은 신념을 실생활에 적용하거나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은 너무나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어떤 상황들을 만나게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화경처럼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쉽사리 지표를 잃어버린다. 예를 들어 ‘곤경에 처한 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이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만큼이나 공감한다.
하지만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 규범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 당신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8세 정도의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다가온다고 치자. 아이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달라고 청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아이가 도움을 받을 확률은 이러한 상황이 연출된 도시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다. 소도시에서는 행인의 4분의 3이 선뜻 도움을 준 반면에 뉴욕, 시카고, 보스턴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8] 모두가 합의하는 규범이 전혀 ‘구체화’되지 못한 것이다."
"『죽음은 나의 일』에서 묘사된 수용소 간수였던 루돌프 랑Rudolf Lang은 끔찍한 구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의무의 인간’이었다.[71] 이 같은 극단적 순응성, 지나친 경직성에서는 자기통제가 미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뿐만 아니라 규범norme에 집착하는 노모패스normopath도 문제라는 얘기다."
"철학자 앙드레 콩트 스퐁빌André Comte-Sponville의 말마따나 자기통제는 ‘힘’이다. 그러나 모든 현자들이 스토아철학자처럼 자기통제력을 칭송하지는 않았다. 저마다 도덕 영역에서의 의지력에 대해서는 다른 미덕들과 비교하여 나름의 의견을 낼 수 있다. 1767년 3월에 장 자크 루소가 미라보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면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할까 한다. 루소는 절제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피력한다. “내가 살면서 저지른 모든 잘못은 심사숙고 끝에 나온 것이었네. 반면에 얼마 안 되는 선행은 충동적으로 한 일이었네.”[73]"
"도덕적 성향은 사람들을 서로 가깝게 해주고 사회적 협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도구이자 대립의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덕적 성향을 조건화하거나 고양하는 것을 규명하고자 노력할 때에 이 성향은 아마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도덕성이 전혀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즉 ‘선’과 ‘악’이 가끔은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부실한 근거의 ‘선포’에 지나지 않으며 이기적인 의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도덕성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도덕성은 더욱 완전해질 것이다."
"일례로 위급상황에서 목격자가 너무 많으면 방관자가 되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접한 사람들에게서는 책임 확산 현상이 한결 적게 나타났다.[15] 반대로 실험참가자들에게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결정되기 쉽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전달했더니,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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