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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데이비드 실즈

by 양손잡이™ 2014. 4. 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8점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문학동네



034.


  그냥, 잡담. 책에 대한 내용은 얼마 없다.


  책에도 분명 교묘한 마케팅이 존재한다. 사재기 따위의 허섭한 수 말고, 은근히 얼굴을 내비치면서 책을 홍보하는 방법이다. 영상의 시대답게 책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자신을 홍보한다. 별그대에서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달빛 프린스에서는 <꾸뻬씨의 행복여행>이었다. (오, 제목은 왜 이리도 긴가) 드라마셀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데다 책 내용에 맞춰 각본까지 수정할테니 마케팅 비용 좀 대라는 요청까지 있었다니 방송이 책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영상만 있느냐, 조금 아날로그적이어도 듣는 홍보수단도 있다. 라디오는 한물 간 지 한참 됐고 이제 그 자리는 팟캐스트가 꿰어찼다. 김영하가 책을 읽어줄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던 팟캐스트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여러 매체의 홍보 의지(?)가 결합하여 많은 소통 채널을 만들었다. 책에 관련돼 가장 인기가 좋은 팟캐스트는 역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다. 저번 회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다루었는데 때마침 알라딘에서 <속죄> 반값 세일을 하면서 이 책이 반짝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어쩌면 우연을 빙자한 마케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 잡담이 길어졌는데 뭐, 잡담하려고 쓰는 포스트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국 하고픈 말이 무언가 하면, 빨책을 듣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샀다는 거다. 빨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아마 알았던들 별로 땡기진 않았을 것이다. 에세이류는 웬만하면 피하는데다 워낙 재미없게 읽은 <죽음>도 한몫 한다. 책에 대한 에세이도 싫어하는데 죽음이라고 좋아할 성싶더냐. 하지만 빨책 신봉자에다가 팔랑귀인 난 이 책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빨책에선 정말 좋은 책이라고 썰을 풀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책이란 건 취향을 워낙 타는 것이고, 게다가 남들이 좋다고 말한 책을 읽었지만 크게 피를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띠지에 적힌 정재승의 추천사가 매우 거슬렸다. 읊어보자면


  매력적인 책이다. 우리의 몸과 삶에 대해 쏟아내는 과학적 통찰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총널살인 같은 명언들에 취하고, 몸의 변화에 공감하며 읽다가, 결국 감동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책!

(이것은 감성 마케팅이 분명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알라딘과 예스24는 이 책을 에세이와 교양인문학으로 분류하였다. 에스콰이어 리뷰에서는 회고록, 에세이, 인문서를 언급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결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 이 책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일단 인생을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의 4장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나이대에 해당하는 과학·생물학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를 말하면서


  우리는 뼈를 350개 가지고 태어나는데(긴뼈, 짧은뼈, 납작뼈, 불규칙뼈), 자라면서 뼈끼리 붙기 때문에 어른의 몸에는 206개만 남는다. 우리 몸무게에서 70퍼센트쯤은 물이다. 지표면에서 물에 덮인 부분의 비율과 비슷하다.


라는 식이다. 과학적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뭔 재미일까. 저자는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첫째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는 볼기분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해서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다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한 후 그 꿈은 접어야 했다. 젊었을 적부터 머리가 벗겨졌고, 허리가 매우 좋지 않다. 등등.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저자가 말하는 과학적 사실에 재미라는 양념을 쳐준다. 자신의 강점이었던 농구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자연히 농구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자신있어 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에세이의 소감이 굉장히 사변적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참 다행이다. 저자와 아버지의 다소 상반된 모습(저자의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한단다. 97세인데도 말이다)도 흥미롭다. 다만, 앞선 과학적 사실과 개인의 이야기가 너무 얼개 없이 서술되는 방식이 많이 발견된다. 빨책에선 이런 뜬금없음이 굉장히 위트 있다고 말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논리적 전개에서 너무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대체 왜 이 에피소드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책을 전체적으로 넓혀준다면, 삶과 인생,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은 책에 깊이를 더해준다. 주옥같은 말들이 워낙 많아 이것만 다 옮겨도 꽤나 많은 양이 될 듯싶다.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이번 책은 갈무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당장 책을 피면 좋은 글귀들이 많다. 몇 장만 펴보자.


  •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33쪽)

  • 나는 33세이다. 급진 혁명가였던 예수의 나이와 같다. 혁명가들에게 치명적인 나이다. _카미유 데물랭 (145쪽)

  •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없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_윌리엄 오슬러 (163쪽)

  • 노인들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키스와 포옹이 필요한 인생 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의사 외에는 누구도 그들을 만지지 않는다. _로널드 블라이스 (251쪽)

  •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것이었다. _엘리자베스 1세 여왕 (287쪽)


  죽음을 다루는 책은 결국 삶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더욱 가열하게 살라고 역설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시간이 참 느리다는 생각도 든다. 1초 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1초가 모이고 모여 1달, 1년이 되면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화살과 시합에서 결국 지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직 남은 시간을 보면, 아니 당장 바로 앞만 봐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빛을 가지는가! 마지막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본문을 옮기고 잡담을 닫는다.


  내가 이제껏 지지부진 늘어놓은 이야기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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