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15-020.
한동안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빠져 살았다. 인문학은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큰 감명과 동시에 나는 여태껏 뭐하고 살았나 하는 후회를 하며 살짝 발을 담갔다. 사회학은 작년 1월, 여태까지 읽은 사회학 서적 중 역대급에 드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덕분에 살짝 입문하게 되었다. 그뒤로 기업의 책임이나 인간 소외 현상, 더 나아가 사회와 결부된 자본 때문에 경제학까지 살짝 기웃거리기도 했다.
물론 그 경험은 내가 지식이 부족하고 공부하는 데 너무 무뎌진 머리 때문에 썩 유쾌하진 않다. 아니, 머리만 탓할 게 아니라 뭔가 새롭고 어려운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아서 멍청하다는 핑계로 책을 덮고 한숨만 쉰 건 아닌가 모르겠다. 올해는 호기롭게 사회학 서적 <차브>로 독서를 시작했다. 미래 우리나라의 모습이 상상되는 영국의 계급사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책인데,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지금과 연계하면서 읽으니 재밌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이 어려워져 결국 포기했다. 끈기를 갖고 묵묵히 읽으면 결국 피와 살이 될 책들을, 이렇게 놓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철학과 예술, 종교을 다룬 <지대넓얕 현실편>과 대중 철학서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를 읽다가 결국 머리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맞아, 나같은 무지렁이는 철학이나 예술 따위의 분야를 건드리면 안됐다. 결국 두 권 모두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고, 덕분에 책에서 관심이 멀어지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 올해에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으나, 직전에 쉬운 소설을 읽었기에 다시 소설을 펼 수는 없었다. 초기 관심 분야인 소설과 과학 중에 소설은 됐으니 오랜만에 과학 쪽으로 눈을 돌려볼까 해서 결국 보관함에 있던 과학 관련 서적인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를 골랐다.
이 책의 저자 파토 원종우는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의 주인장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잠시 이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의 저자인 이종필 교수가 출연한 인터스텔라 편을 들었다. 나도 한때 블랙홀이다 웜홀이다 시간여행이다 많은 과학 대중서를 읽어(공부는 물론 하지 않았다. 소설 보듯이 대충 넘겼을 뿐) 팟캐스트 내용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거라 생각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팟캐스트를 듣고 나니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특수 상대성 이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몇편 듣지 앟고 팟캐스트 구독을 중지했다.
팟캐스트 전성시대답게 팟캐스트를 기반으로 책이 많이 출간된다. 그 시작은 <나는 꼼수다>였고,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은 <지대넓얕>이다. (책의 원고가 방송보다 먼저여서 팟캐스트 기반은 아니지만 방송 기저에는 책의 내용이 깔려 있다) 최근에는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팟캐스트를 기초로 <생각해봤어?>를 꾸렸다. <사이언티피쿠스>도 파토의 팟캐스트를 토대로 만들어겠거니 하고 집어들었건만 웬걸, 아니다. 전혀 아니다.
이 책은 이론을 쉽게 알려주는 대중과학서도 아니고 <지대넓얕 현실편>처럼 단순히 과학사를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지도 않았다. 글은 과학을 기초로 한 에세이나 칼럼에 가까운 편이다. 과학에 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선 적당한 순서로 나열한 느낌이다. 순수하게 과학 이야기만을 하기도 하고 SF영화(매트릭스)를 다루기도 하며 중간중간 저자가 쓴 단편 SF소설도 실려 있다. 저자는 가장 아름답게 쓰여진 과학서로 <코스모스>를 꼽았는데, 아쉽게도 그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책이라는 큰 틀에서 쓰인 글들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주제만 있을 뿐 두꺼운 줄기를 찾기가 조금 힘든 편이다.
직전에 읽은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에서 다룬 주제를 똑같이 얘기하는 글도 있는데, 다루는 철학적 내용이 너무 약해 다소 흥미가 떨어진다. 기대보다는 깊이가 없어 아쉽긴 하나 각자의 글은 적당한 난도와 적당한 잡담이어서 단순히 과학 에세이로 접하면 좋을 내용들이다. 간혹 나오는 단편 소설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필력은 그의 다른 저작 <태양계 연대기>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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