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책 |
026.
독서동호회가 아니었다면, 알라딘 보관함에 아직도 잠들어 있을 책이었다. 동호회 모임 참석자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고 했을 때, 너무 쉬운 책을 골라 가벼워 보이지 않아 보이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 개인적으로 책에 관한 책(메타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도 썩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저자 서민의 이름만을 믿고 주문하였다.
저자는 기생충박사이다. 단국대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는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경향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했고 MBC <베란다 쇼>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 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질 부족이라는 이유로 잘렸다고 한다.(...) 다시 글이라는 초심으로 돌아오는 첫 결과물이 <집 나간 책>이란다.
저자가 쓴 글은 매우 쉽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쉬운 단어로 내용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밌다. 글 자체에 위트가 철철 넘친다. 허나 그중 최고는 감히 비꼬기다. 변희재를 형님이라고 칭하며 걱정하는 투로 쓰인 글은, 얼핏 봐서는 변희재를 두둔하고 걱정하는 것 같지만 세세히 뜯어보면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비판의 대상은 국무총리뿐 아니라 대통령도 있으니 이분, 곧 소환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집 나간 책>은 저자가 여지껏 보인 글과 일맥상통한다. <집 나간 책>은 기본적으로 책을 주제로 한 서평집이다. 으레 감상이 주(主)인 독후감과 달리 서평은 책을 소개하거나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집 나간 책>도 우선 책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일반적인 서평처럼 발췌문을 통해 책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빌어 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섞인 개인적인 글이 튀어나온다. <온도계의 철학>을 언급하면서는 저자인 장하성과 자신이 동창이며 학창시절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을 말한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비꼬기를 여지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필립 로스의 <유령 퇴장>을 읽으면서 좌파의 앞날을 예견한다고 하지 않나, 로라 힐렌브랜드의 <언브로큰>은 어느새 대통령을 은근히 언급하면서 끝난다.
글이 이리 재밌는 이유는 저자가 큰 부담없이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서평을 쓰는 이유를 몇 꼽는다. 서평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는 수단이며, 좋은 글을 썼을 경우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얻기도 한다고 말하니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보통 서평집에서 다루지 않는 미스터리 소설(<유괴>, 다카기 아키미쓰)의 서평도 있는데, 저자가 글을 재밌게 쓰는 이유는 재밌는 책을 잘 고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생각했던 메타북이나 서평집과는 다른 면모를 가진 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메꾸지만 책에 충분히 흥미가 가게 하는 모양새니, 서평집으로서는 충분히 그 몫을 다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센스와 위트까지 갖췄으니, 이 어찌 안 읽고 넘기겠는가. 유머와 진중함 둘 다 놓치지 않은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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