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딱 한마디만 하겠다. 이 책을 고른 건, 실수다. 하아... 감상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잡담으로 시작해 잡담으로 끝나지 않을까.
1. 2010년에, 김영하 작가의 소규모 강연회에 다녀왔다. 네이버에서 주최하고 홍대 이리카페에서 열린 재능기부식의 행사였다. 40명의 참가자 자리를 두고 백명이 넘는 인원이 덧글로 전쟁을 펼쳤다. 그떄 나는, 내 마음을 솔직히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덧글로 이리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2. 김영하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그해 초에 발간된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신문 신간 소개란에서 보고야 그 이름을 어렴풋이 알았다. 덧글을 쓴 네티즌들은 다들 그의 책을 꽤나 읽은 듯이 보였다. 작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작가를 만날 수 없었다. 강연까지 남은 2주 동안 김영하의 초기작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검은 꽃>과 그나마 최근작인 <퀴즈쇼>와 <오빠가 돌아왔다>를 후딱 읽었다.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 작풍이 조금 거슬렸지만 마지막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아, 이 작가는 내 스타일이구나.
3. 강연에 다녀온 소감은 글 가장 아래에 접은 글로 첨부하겠다. 여튼, 그날은 내 독서와 글쓰기에 있어 어떤 기점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면적 자아를 나이 먹어도 유지하는 게 바로 작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아 아래 깊숙히 박혀있는, 괴물 같이 생겨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면적 자아까지 내려가야 한다, 진짜 자아의 '날 것'을 꺼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은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다. 아직까지 이리카페의 기억이 머리에 깊숙히 남아 있다.
4. <말하다>는 김영하의 강연, 인터뷰, 대담을 글로 모은 책이다. 그러니까 머리에 남은 이야기가, <말하다>에 또 있다. 한번만 반복되면 모르겠다. 똑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변주해서 그 긴긴 글에 풀어내는데, 조금 질렸다. 5년 전에 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우려먹다니! 방송과 TED에서 몇번이고 한 말을 다 모여 있다니! 유일하게 전작한 작가에게 든 배신감이랄까. 사실 <보다>도 씨네21에 그가 쓴 칼럼을 모아서 출간한 책이다. 곧 <보다>와 <말하다>는 김영하를 잘 모르거나 정말 팬인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5. 미안합니다, 김영하 작가님. <살인자의 기억법>부터 점점... 흑흑.
드디어 그날입니다 그려
24일, 그토록 고대해오던 김영하 작가님의 재미난 강연날
발표날부터 오늘까지 이 강연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자 작가님 소설을 들여다봤지만 당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보던 티비 프로그램 때문은 절대 아님)
잠시 모임 가신 어머니께 버스카드를 빌려야 하는데 안 들어오시고, 전화도 안 받으시고, 솔직히 무슨 과 1등 파티도 아닌데 엄청 설레더군요
생각보다 상수역이 가깝더군요
20분 차를 탔는데 58분 좀 안 걸렸으니 집에서 한 시간 십 분 정도 걸리네요
아, 홍대나 서강대, 연대, 이대를 갔으면 집에서 다닐 수 있었을텐데, 혼자 한탄합니다
아 ㅡㅡ 이대는 아니구나 헛소리
상수역에서 내려 길을 좀 헤맬 줄 알았는데 제가 의외로 길치는 아니어서 금새 찾았습니다
이리카페가 의외로 좁더군요
책과 음악의 공간이라서 좀 널찍할 듯했는데 그냥 카페 크기였습니다
홍대랑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나 찾을 듯한 곳에 위치합니다 (순전히 제 생각)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니 네이버 직원이신 듯한 두 분이 아이디를 여쭤보시더라구요
한 분이 목록에서 제 아이디를 찾으시는 동안 다른 한 분은 제 사연을 보신 것 같네요
제게 "아, 공대생이시죠?" 라고 물어보시네요
왠지 부끄러워라 ㅎㅎ
살짝 웃으며 들어갔고, 음료 쿠폰을 이용하여 냉커피 한 잔 들이키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앞에서 네 번째 자리이긴 했지만 앞 자리 분들의 머리 사이로 시야가 훤히 트였더군요
뒤에 앉은 것 치고는 괜찮은 자리였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네이버 기능재부 담당 직원 분께서 나오셔서 기능재부의 의의를 가볍게 말씀해주시고 곧 작가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UN 난민기구 한국지부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일장연설을 하시고 들어가셨어요
영어였지만 들을만 했습니다
제가 요즘 영어 리스닝 공부 좀 했더니... ㅎㅎㅎ
작가님께서는 키노트를 쓰셨는데 리모컨이 안 먹어서 수작업으로 놋북 조작
아래로는 강연 중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좀 요약해서 적어볼게요.
잘 쓴 글이란?
무려 2000년 전 서양 수사학에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유용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수사학 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해당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글 쓴 사람이 깨끗하고 정직하다면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3개의 개념을 말하는데 감정에 해당하는 파토스Pathos, 말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에토스Ethos, 그리고 논리에 해당하는 로고스Logos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서양은 파토스, 동양은 에토스를 강조한다. 결국은 '원천/사람/글쓰기'라는 것이 글이란 수단을 통해 '독자/청중'에게 전달된다.
이에 연애편지를 쓰는 것도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연애편지의 경우 주로 독자가 한 명으로 확실히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라는 세 요소가 적절히 잘 조화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글쓰기 초보의 경우 독자를 불특정 다수로 잡는다. 이렇게 되면 정확힌 독자를 결정하기 힘들고 이는 글쓰기의 목표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적정 수준의 모델독자를 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덧. 저는 이 부분이 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릴 때는 언어적 능력은 달리나 의사소통은 잘 되었다. 어린 아기들이 웅얼거리면 어른들은 그 언어를 알아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린 자아, 즉 내면적 자아를 잃는다. 보통 내면적 자아 위에 사회 생활에 필요한 사회적 자아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이 내면적 자아를 나이 먹어도 유지하는 게 바로 작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아 아래 깊숙히 박혀있는 내면적 자아까지 내려가야 한다. 엇눌린 욕망을 꺼내고 내면적/사회적 자아 사이에 생길 수밖에 없는 차이를 매꿔야한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면서 내면의 괴물과 만나고 그 괴물을 문에서 꺼내야한다. (사실 괴물이 아니라 보물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우리는 광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에세이는 소설과 같은 언어와 문장으로 쓰이지만 '미친 놈'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인간적 욕망이라는 내면의 괴물의 얼굴에 가면을 씌운다.
위에서도 썼듯이 작가는 자신 안의 '괴물'을 끌어낸다. 진짜 자아의 '날 것'을 꺼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너무 무서워서 겁내고 남에게 미루고 하면 영영 그곳에 가지 못한다.
톨스토이가 장편 '안나 카레니나'를 쓸 때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안나가 무섭다, 지겹다, 질린다!'
소설을 쓸 때 자신 안의 괴물이 튀어나오지만 이를 치부라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가 생각하기엔 흉칙하고 무서운 존재이겠지만 남이 봤을 때엔 좋은 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억누르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를 포착해야 한다.
깊숙히 아래에 있는 내면의 문에서 괴물은 밖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문 틈 사이로 한 발을 넣는다. 이 첫 발이 담대한 첫 문장이다. 뒤이어 아주 좁은 틈으로 괴물들이 마구 쏟아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들이 문장이 되고 작가는 이를 책임져야 한다. (여기서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을 예로 들으셨다) 아마 카프카는 '변신'의 집필 과정에서 치밀한 구성을 세우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면의 괴물이 튀어나오자 자신만의 목소리로 글을 써내려갔다.
이런 당대한 첫 문장은 갑작스레 나온다.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따위 생각할 틈이 없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다보면 정말 자신만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므로 어른들에게 혼난다. 그럼 그 버릇이 사라질테고 아이는 정직하게 산다. 하지만 정말 정직하게만 살 수 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작하는 순간은 정말 환상적인 것이다. 이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자신의 머리 안에서 상상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 열쇠로 따는 서랍을 하나 만들고 부모님께 숨기고 싶은 글을 쓰라고. 자기 내면의 괴물이 밖으로 나오면 너무 본능적이고 흉칙하기 때문이다.
두 줄 요약 :
v 어린이의 마음
v 내면의 문으로 나오는괴물같은 첫 문장을 catch 할 수 있는 능력
강연 뒤로 많은 질의응답이 오고갔지만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네요
이 부분은 녹화도 안하던데 좀 머릿속에 넣어둘 걸 후회됩니다
참 글이 서두도 없고 재미도 없군요
사실이에요
노트에 휘갈겨 쓴 내용에 제 기억으로 조금 살을 붙였으니 뭐 되겠나요
결국 결론은 맨 아래의 두 줄 요약 되겠네요
왠지 허무한 포스트. 사진 한 장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전체적인 내용은 많은 작법서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작가님도 40명의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불특정다수의 청중에게 강연을 하자니 너무 전문적인 강연을 하긴 좀 그러셨겠지요
하긴 글을 잘 쓰는 것에 전문적인 게 어딨겠나요. 결국은 자기 감이고 필인거지 뭐
사실 작가님의 작품론이나 문장론, 실제적인 글쓰기 방법에 대한 강연을 바랐지만 내용이 조금 달랐죠
내용도 많이 들어본 것들이었지만 제가 이 강연에 대해 가졌던 의의는 '실제 작가와의 대담'이었으니 목표는 달성한 거지요
하긴 작가님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그나마 좀 수확이랄까
글이 안 써질 때는 주위와의 관례를 완전히 단절하신다는군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공감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왠지 슬프더라구요
난 내면의 괴물과 맞설 준비는 되어있는가?
만약, 내 인생 어느 한 귀퉁이서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나는 그것을 겁내지 않고 같이 공감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아니, 그 전에 계단을 내려가야 문 귀퉁이라도 볼 텐데 참 걱정입니다
아파트 지하실도 어두워서 무섭다고 내려가지 않는 저인데 거기보다 더 무서운 내면을 어떻게 들여다볼지 참 걱정입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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