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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20주년 개정판을 두고, 간단한 소회

by 양손잡이™ 2017. 2. 2.
왕좌의 게임 1 - 10점
조지 R. R. 마틴 지음, 이수현 옮김/은행나무



  이제 <얼음과 불의 노래>(이하 얼불노)는 누구나 안다. 처음 소개됐을 때처럼 마이너한 소설도 아니고, 판타지라는 이름 아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도 아니다. HBO에서 정말 멋진 판타지 드라마로 탈바꿈시켰다. 원작의 제목인 '얼음과 불의 노래'보다 오히려 드라마 제목인 '왕좌의 게임'이 더 유명하다.


  얼불노가 국내 출간 20주년을 맞이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표지가 원서의 멋들어진 그것으로 바뀌었고, 번역자가 바뀌었다. 번역자가 바뀐 게 왜 중요하느냐. 나처럼 번역본으로만 읽은 사람들은 의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4부(기선정 역)의 번역이 완전 개똥이어서 3부까지 번역을 맡았던 서계인 씨가 다시 펜을 잡아 나온 번역판을 환영했다. 하지만 서계인 씨가 번역한 여태까지의 내용도 엉망이었다니, 놀랄 노자다. (나무위키 참고)


  처음 저 문서를 봤을 때 정말 놀랐다. 그렇게 재밌게 읽었던 작품이었는데 원작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읽고 있었다니. 가장 충격적인 건, 1부 초반에 자이메(제이미)가 브랜을 창문에서 밀어버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읽었던 번역판에서 자이메는 '난 이런 일이 너무 재미있어(위키 참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서는 'The things I do for love'이다. 사랑을 위해서 하는 일들, 대충 이렇게 번역된다. 번역자는 저 한 마디로 자이메를 개쓰레기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버렸다. 이외에도 많은 오역들이 있는데, 위키에서 이 내용들만 읽어도 하루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읽다 보면 내가 정말 같은 책을 읽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번역서보다 차라리 원서를 읽으세요, 라고 인터넷에서 많이들 말해주었다. 2009년, 상병 시절에 집에 부탁해 얼불노 원서 1권을 부대에 들여왔다. 연등 시간을 이용해 하루에 한 챕터, 아니 열 쪽씩... 그렇게 한 100쪽을 읽다 지쳐버렸다. 결국 얼불노는 덮고 해리포터를 폈다.(그나마 해리포터도 2권 중간에서 멈췄다) 2012년에 얼불노 5부 <드래곤의 춤>이 막 발간되었을 때도 원서를 욕심냈다. 이번엔 제대로 시작해보고자 다섯 권의 페이퍼백을 모아둔 세트를 주문했다. 이 세트는 몇 주 뒤 모니터 받침이 된다.


  총 7부로 기획된 이 장편소설을 결국 읽기는 해야 했다. 예전부터 읽어온 시리즈기 때문이다. 2013년 5부가 막 나왔을 때 앞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크레마 샤인을 사서 이번엔 전자책을 샀다. 2부까지는 어찌어찌 넘겼는데 3부부터는 답이 안 나와 결국 때려치웠다.


  그리고 올해 다시 읽는 중이다. 5월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이다. 올해 책이 잘 안 읽히는 건,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얼불노가 원인이라 생각한다.


  2007년에 처음 얼불노를 접했다. 무려 4권짜리의 긴 이야기였지만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1부의 충격적인 사건(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의 목숨이 뎅강-)은 지금 읽어도 어안이 벙벙하다. 아니, 1부가 왜 4권이냐고? 구판으로 양장본 두 권이 아니라?




  아니, 처음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얼불노는 이런 책이었다. 반양장으로 4권짜리 시리즈고, 구판의 구판으로는 2부까지 번역되었다. 맞다. 나 이거 팬 부심 부리는 거다. 엣헴.


  군대 전역 후 한 달만에 4부 까마귀의 향연까지 모두 본 기록이 있다. 다시 읽어도 재밌는 소설. 복학하기 전 잉여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불어준 소설. 다 합해서 만 쪽 정도 되는 분량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웨스테로스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불노가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 시절 신문에서 <반지전쟁>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 기뻤다. 이 방대한 양의 서사시를 어떻게 티비 안에다 녹일까? 독자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표현될까? 아더는? 드래곤은? 에다드 스타크 역의 션 빈을 보고 아, 정말 캐스팅 한번 잘했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게 얼불노는 전파를 탔고,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게 된다. 막 드라마가 나올 때 한 친구에게, 얼불노 드라마가 나오니 원작도 읽어봐라, 웅대한 서사시의 에픽 판타지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판타지라는 단어에 기겁을 하며 자기는 그런 책은 안 읽는다고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판타지가 아닌데, 주인공이 검기로 몇 만의 병사를 쓸어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물론 이 친구는 나중에 얼불노(드라마)의 광팬이 되었다.


  난 유행에 잘 반응하지만 그러지 않은 척하는 약간 이상한 성격을 가졌기에, 드라마 1부가 끝나고 나서야 챙겨봤다. 헌데 게임을 하면서 옆에 드라마를 켜놔서 그런지, 영 재미가 없다. 이미 소설에서 본 내용이라 이야기는 충격적이지 않고, 눈은 게임 화면을 보느라 아름다운 영상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드라마 얼불노를 멀리 보내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나중에 집을 얻으면 가장 먼저 얼불노 블루레이 세트를 살 거다.


  번역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잡담이 길었다. 이번 번역자는 이수현 씨로, F/SF 쪽에서는 알아주는 번역자라고 한다. 단어를 잘못 쓰거나 문장이 아예 바뀌고 내용이 통째로 빠지거나 인물을 완전히 잘못 묘사한 구작과는 달리 깔끔한 번역이라고 한다. 다만 몇 장을 읽어보니 문장이 조금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원작의 어조를 최대한 살려서일까? 또한 익숙한 영어 단어들이 한글로 번역됐다. 구판으로 시작한 나에게 너무 어색한 부분이다. 마치 빌보 배긴스를 골목쟁이네 빌보로 읽었을 때와 같달까.


  결과적으로 원작 훼손 수준인 구판과 비교하면 아주 양호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다만 똑같은 출판사(은행나무), 원서 한 권이 번역본 두 권으로 되면서 가격이 배가 된 점, 20주년 개정판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음에도 반양장으로 나온 점들이 지적받고 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원작을 읽지 못했던 나에겐 구작이라도 감지덕지였는데, 이번 개정판이 아주 기대가 된다. 이제 1부가 출간되었고 2부는 2017년 5월 출간 예정이란다. 그렇다면 3부는 2018년이라는 소리다. 으어어... 너무 멀다. 지금 2부 후반부를 읽는 중이고 곧 3부로 넘어갈 예정인 나에겐 이 소식은,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 지금의 번역을 쭉 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동안 영어 실력이 확 느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다. 차라리 영어 공부를 할까? 그런데 난 해리포터도 못 읽잖아. 나는 안될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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