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년 전,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었다. 심금을 울리는 책이었다. 당연히 그해의 책으로 꼽았다. 산문집이 7년 주기로 출간돼서, 다음 책은 2025년인가 싶더니, 그보다 조금 빠른 2022년 가을에 그의 새 책이 나왔다.
2. 2014년,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큰 비극을 맞았고, 이 시점 이후로 한국 문단의 기조가 많이 바뀌었다.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이런 사회적 슬픔을 가득 담은 책이었다(저자는 슬픔을 토해낸 사람 중 하나였다). 이번 책은 인생과 사랑, 슬픔,이별, 죽음 등 인생의 하나하나를 다루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역사’인 것 같다.
3. 시를 다룬다. 시를 소개하면서 관련된 배경지식을 함께 말한다. 레퍼런스가 엄청나게 많다. 고대 중국시부터 한국, 서양의 현대시, 심지어 욥기까지 다룬다. 단순히 시를 소개하고 배경만 설명하느냐, 그렇다면 이 책이 좋다고 하지 않는다. 시에 대한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다. 학교처럼 주제, 화자, 소재 등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시에 어떤 사연이 담겼을지 같이 상상하고 말해준다. 사실 뻔한 주제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저자의 문장력이 너무 좋아 모든 게 새롭게 읽힌다.
4. 시는 해석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지만, 이런 따뜻한 시각의 해설자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한다.
5. 너무 좋은데, 어떻게 좋은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서, 독서노트조차 이렇게 거칠다. 부족한 감상은 이만 한다. 정말 많은 문장에 줄을 쳐뒀는데, 고르고 골라 딱 3개만 남겨본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잇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_7쪽, ‘책머리에’
많은 문학이론가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 세계의 완강한 질서에 감히 도전하는 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르르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 비타협의 결과로 그는 패배하고 말지만, 그 순도 높은 패배가 오히려 주인공의 궁극적 승리가 되는 아이러니의 기록, 그것이 바로 소서이라는 것. 그러므로 ‘위대한 개츠비’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면, ‘위대한 양생/이생’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비록 운명에는 패배했으나 사랑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았으니까. _120쪽,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러나 고통과 우연과 굴욕이 카버의 생을 끝내 지배하지는 못했다는 감동적인 결론도 적어야 하리라. 마지막 시집의 마지막 시인 ’만년의 조각글’은 자문자답 형식으로 제 인생을 충평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이번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한 것 을 얻었나?/그렇다./무엇을 원했길래?/이 지상에서, 나를 사랑받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카버는 자신이 겪은 아픔을 ‘그렇다 하더라도even so’에 욱여넣고, 그랬지만,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긍정한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가장 진솔하게 말하는 데 성공한 이 시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단 한 글자도 없다. _221쪽, ‘단 한 번의 만남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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