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의 이야기

J에게 보내는 편지

by 양손잡이™ 2011. 4. 28.

  안녕, J. 깜짝 편지를 받게 돼서 너무 놀라지는 마. 언젠가부터 직접 손으로 쓴 편지가 사라져서 너무 아쉬웠어. 옛 감성을 가득 담아 짧게 몇 자 적는다. 글씨가 엉망인 건 이해해줘. 원래 천재는 악필이라잖니?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내 글씨 보면서 한 번이라도 씩 웃길 바란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너는 아마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편지여서 미안해. 그래도 이게 내 감정을 조용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걸 이해해줘. 그래, 옛날 노래 제목을 갖다 붙여볼까. JJ에게. , 뭔가 더 낭만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 이니셜을 보고 내 이름을 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아. 그냥, 어디선가 너를 몰래 쳐다보고, 또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줘.
  
그거 아니? 생각해보면 너와 내 거리는 정말 가깝다는 걸? , 우리가 듣는 전공 수업이 모두 겹친다는 걸? 교양수업도 같이 듣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네가 나를 알아버릴까 그게 무서워서 차마 같이 들어가진 못하겠더라고. 오늘도 네 뒷자리에 앉았어.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노트 대신 하염없이 네 머리만 바라보곤 해.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네 뒷자리에 앉았었는데 말야, 너는 왜 뒤를 한번도 돌아다보지 않았는지 참 궁금해.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너는 참 바쁘니까. 잠깐만 시간이 나면 너는 그 환한 미소로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기 일쑤거든. 그 짧은 쉬는 시간에 먼 매점까지 달려가 슈크림 빵과 딸기우유를 사들고 오더라. 강아지마냥 혀를 살짝 내밀고 헥헥 대기도 하지. 점심을 못 먹었다고? 매 수요일마다 그런 너를 보면 안쓰러워 죽겠어. 너를 주려고 미리 빵이랑 우유를 사온 적도 있어. 하지만 네 뒷모습을 보며 강의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있던 용기 없던 용기 모두 흘러나가 결국 내가 먹고 말았어. 너는 그날도 매점을 다녀온 뒤 헥헥대며 상기된 얼굴로 주위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했지. 우유가 오래돼 미지근해져서였을까, 약간 비릿한 맛이 돌더라.
  
내가 바라는 건 아주 작아. 그저 네가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안녕, 한 마디만 건네는 건데 말야, 저 뒤편에서 너를 바라보며 이렇게 편지를 끼적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해.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너의 무관심에 조금 애달픈 것도 사실이야. 우리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잖아?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은 그곳에서 너와 내가 마주친다는 거 아니? 물론 너야 나를 알아채지 못하겠지. 너는 네 옆의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지나가곤 해. 때로는 혼자 그 길을 내려올 때가 있긴 하지만, 너는 그럴 때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라고. 사실, 그 길로 내려오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내가 먼저 길가로 피해버려. 괜히 너를 보는 내 눈이 너에게 보일까봐 무섭거든. 너는 도로 중앙에, 나는 도로변에. 먼 거리는 아니지만 1년 동안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해 안달을 떠는 나도 참 우스워, 그렇지? 멀지만 우리가 스쳐지나갈 때, 눈을 살짝 돌려 너를 힐끔 쳐다봐. 하지만 내게 걸어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우습게 볼까봐 - 변태로 보일지도 몰라 -, 또 내 눈빛을 느끼고 네가 나를 쳐다보며 이상하게 볼까봐, 곧 눈을 돌려. 그리고 다시 땅을 쳐다보며 걷지.
  
내가 바보 같아서 그래. 너에게 신경이 너무나 쓰이지만 못나 보이지 않으려고 평소처럼 조용히 너를 바라보고 있어. 나 자신은 내가 너무 잘 아는 걸? 거울을 보며 아무리 뜯어봐도 멋진 구석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그런 내가 네 옆에 서면 네가 얼마나 초라해 보이겠어? 만약 네가 나를 안다면 처음엔 그저 호기심일 거야. 이 사람은 누군데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었을까, 하면서 말야. 아마 그런 낯선 느낌이 신기해서 나를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 호기심도 내 못남으로 인해 금방 동나버려 곧 싫증낼까봐 걱정되기도 해. 나중을 생각해보면 나는 더욱 네 앞에 설 용기가 나지를 않아.
  
너 몰래 선물을 사주고도 싶어. 하지만 지갑을 열고는 소망이 커지기 전에 얼른 닫아버리곤 해. 돈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하지만 네 생일을, 근사한 점심 한 끼 못해서 단촐하게 지낼 모습을 떠올려보니 왠지 미안하더라. 네 친구들은 화려한 파티를 하고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함박웃음 지으며 너에게 자랑하겠지? 넌 그저 소박하게 조그마한 선물 하나밖에 받지 못했는데.
  
, 나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무심코 토한 무뚝뚝한 대답에 네가 상처받지 않을까, 너라는 존재가 너무 아름다워 괜히 내가 다정하게 굴지 못할까 걱정이 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니? 그 말이 나에게도 너무나 잘 들어맞아 서로 큰 상처를 가지고 돌아설 것 같아 무섭기도 해. 지금처럼 너를 방긋 웃게 할 수 없단 걸 알아서 한 걸음 내딛어 조금이라도 다가서려다 말았어. 매번 좌절하고, 단념하려해도 이놈의 마음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어. 그때마다 내 맘은 자라고 있지.
  
사랑은 먼저 가혹함이란 말이 있어. 지금 너의 뒤에서 너만을 바라보는 내게 너무나 잘 들어맞는 문장인 것 같아. 아직 우리는 서로 알지도 못했는데 나는 벌써부터 미래를 꿈꾸고, 혼자 좌절하곤 하지. 참 우스운 일이야, 어차피 이뤄지지도 않을 일인데 나 혼자 들뜨고, , 매번 이렇게 생각하면 우울해져. 그냥 슬퍼. 밖에선 마주칠 수 없는 너를, 꿈에서는 정면으로 너를 바라볼 수 있게, 잠들기 전 너를 무진 생각하다 잠들어. 하지만 나에게 그런 날이 올까 참 궁금하다. 아무리 나를 속인다 해도 그럼, 이라고 답을 할 수가 없네.
  
걱정하고. 쑥스러워 한마디도 던지지 못하지만 매일 너의 뒤에서 네 목소리를 듣고 있어. 네가 웃으며 대화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오롯이 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내 못난 모습 애써 감추려 계속 네 뒤에만 있는 내가 참 못났다. 웃기지, 그렇게 원하고 갈망하면서 왜 다가가지 못하는지.
  
너와 만난 후부터 습관이 생겼어. 거울을 보며 하루에 열 번씩 크게 웃는 연습을 해. 너와 내가 마주보는 날, 너에게 환한 미소를 보일 수 있도록 말야. 네가 내 옆에 있을 어느 한 날에, 너에게 보일 웃음. 함께, 크게 웃을 날을 그리며 이만 줄일게.
  
이 편지네가 보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

3,021자

반응형

'꿈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가 있든 없든, 살고 있다  (0) 2011.05.13
무제  (0) 2011.05.13
안부를 묻는다  (2) 2011.05.08
5분  (0) 2011.05.05
그날 밤, 우리들  (0) 2011.04.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