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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새까만 블랙유머 소설 - 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by 양손잡이™ 2011. 11. 9.
독소소설 - 10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바움


  와, 이청준 선생님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이후로 근 두 달 만의 단편집입니다. 그동안 너무 장편소설만 봤네요. 호흡이 긴 놈들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려니 이렇게 늘어진 걸지도 몰라. 하여간 전 단편을 좋아합니다. 우선 짧거든요. 짧아서 많은 집중력을 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이야기를 길게 끈 다음에 찬찬히 감동(또는 카타르시스)을 주는 장편과 달리 한정된 지면에서 빵빵 터트려야 하는 단편이 배울 점이 꽤나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편 <독소소설>은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독소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웃음 3부작 중 하나입니다. 일전에 읽었던 <흑소소설>과, <괴소소설>의 형제격입지요. 각각 '독기 어린 웃음', '쓴웃음', '괴이한 웃음'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웃음 3부작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보다는 이게 히가시노 게이고? 였습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물과 스릴러,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 작가이거든요. 가장 유명한 작품만 봐도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붉은 손가락>이 모두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책이잖아요. 하긴 <붉은 손가락>이 사회파 추리소설이기도 하네요. 사회풍자로 가득한 <독소소설>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면면이 있군요.

  <독소소설>의 광고 카피를 한번 보실까요.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웃음 3부작 중 '독기 서린 웃음 소설'. 기상천외한 웃음 뒤에서 드러나는 삶의 섬뜩한 단면들을 발견하는 순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에 중독된다.


  말그대로 독(毒)과 같은 소설입니다. 읽으면서 웃긴 해도, 그것이 단지 웃겨서뿐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독을 잔뜩 품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거지요. '쓴웃음 소설'을 표방하는 <흑소소설>과 비슷한 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은 총 12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은 무거운 분위기를 많이 띄곤 하는데 풍자소설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일본 특유의 가벼운 문체로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거기에 몇 작품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체나 이야기 전개가 다른 단편과는 조금 달랐거든요. 뭐, <나무>를 원어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번역판과 비슷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단편 하나하나는 정말 재밌습니다. 모두 뒷통수를 세게는 아니지만 손가락으로 톡 밀 정도로는 반전이 있고 확실히 사회풍자를 하는 대목도 등장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게 되네,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단편집 뒤로 갈수록 풍자성이 조금 떨어지긴 하나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입니다. 앞서 이게 히가시노 게이고? 라고 느꼈다면 다 읽고 난 후에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아 이름 한번 짜증나게 기네요)라고, 엄지손가락 척 하고 들어줄 만합니다.

어린이답지 않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유괴천국'.
안과 밖의 다름을 감추려고 애쓰는 '도미오카 부인의 티파티'.
메뉴얼이 아니고는 살지 못하는 '메뉴얼 경찰', '인형 신랑'.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 마는가 '여류작가'.
나만 아니면 돼 정신의 '유괴전화망'.

  수동적인 성격을 가진 저로서는 '메뉴얼 경찰'과 '인형 신랑'이 가장 와닿았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도 글을 보는 시선은 각각 다르니 한번 펼쳐보시고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2011년 11월 7일 ~ 11월 8일,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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