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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아저씨 (오은)

by 양손잡이™ 2013. 9. 20.
문학동네 75호 - 2013.여름 - 10점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문학동네



아저씨

_오은 지음


앞장서서 손을 들다가

두 손 드는 날이 많았따

사이사이

나이가 들었다


가방은 커지고

머리는 비어가고

사이사이

심장이 뛰었다


넣을 게 없었다

뺄 것도 없었다


나이 주름 흰머리

사이좋게 늘어가는 것들이 있었다


책은 쌓여가고

기억력은 바닥나고


수첩에 적는 글씨는 점점 커지고

수첩에 적힌 글씨는 점점 작게 보이고


허름한 식장에 혼자 들어가는 일이

일도 아닐 때

그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때


수제비를 주문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안경을 코허리까지 내려쓰고

신문을 읽으며 혀를 끌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말이 앞서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면

어김없이 뒤가 보였다


수제비 속에 든 오색 수세미처럼

빨간만장 파란만장한

뒤가 따라왔다 뒤따라왔다


웃음 용기 전화번호

꼴좋게 줄어드는 것들이 있었다


입에 침을 잔뜩 발라 거짓말을 해도

입술은 언제나 튼 상태였다


수제비 한 점을 넣고

순순히 입을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차진 밀가루는 혀에서 살살


깊은 내력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만 나만 가만

꿀꺽


가방을 두고 나왔다

머리는 쓰지 않았다


아, 저…… 씨!


_계간 문학동네 7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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