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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세상은 모순이 가득해 - 철학의 13가지 질문 (잭 보웬)

by 양손잡이™ 2013. 8. 30.
철학의 13가지 질문 - 7점
잭 보웬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다른



079.


0. 짧게 짧게.


1. 두 달 전에도 멋진 철학 입문서라고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포스트) <철학 쑈>의 출판사인 '다른'에서 철학서적을 하나 더 냈길래 냉큼 구매했더랬죠. 점찍어두었던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의 저자인 잭 보웬의 책이어서 더욱 신뢰가 가기도 했구요. 물론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사놓고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완전히 잊었는데, 어느 날 택배가 왔더군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는데 말이죠. 알고보니 <철학 쑈>의 구매 이벤트에 당첨됐더군요. 덕분에 똑같은 책이 두 권.


2. 선물 용도 외에 같은 책을 다시 구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구입은 고사하고 누구에게 선물받은 적도 없습니다. 참 비루한 인생이야. 쨌든, 짧은 기간에 같은 책이 생긴 건 운명이다!라는 생각도 들고 손때는 커녕 먼지만 끼는 책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박스 뜯자마자 책을 폈습니다.


3. 제목 그대로 철학서적입니다. 기존의 철학서와는 다르게 소설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피의 세계>가 철학사를 다루었다면 <13가지 질문>은 몇 가지 주제나 소재를 던져주고 그에 대한 철학적 논제를 풀어나갑니다. 지식, 자아·이성·정신, 과학, 참과 거짓, 신, 악, 동양 사상, 종교와 이성, 자유의지, 과학, 논리, 사회·정치·돈, 윤리와 도덕에 대해 총 13장에 걸쳐 말합니다.


4. 그리고 이 한 장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주인공인 이언이 꿈에서 노인을 만나 각종 모순이 가득한 질문과 상황을 맞닥뜨리는 이야기, 꿈에서 깬 이언이 부모님과 함께 그 모순에 대해 토론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만나 새로운 의문을 갖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재밌는 부분은 첫번째 이야기인 꿈의 세계입니다. 난생 처음 들은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날마다, 모든 것은 크기가 두 배가 된다.'입니다.(10장- 이기심, 과학) 측정기구마저도 두 배로 커지기 때문에 크기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재밌지 않나요? 이 역설을 돌파하는 법은 역시 책에 있기 때문에 한번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5. 책의 중간중간 가장자리에 주석이 달려 있는데요, 이언이 경험하는 사상(철학, 과학, 심리학, 종교학, 인문학, 사회학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주석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모두 좋은 내용입니다. 추가로 책 마지막의 '더 깊은 질문들' 장이 걸작입니다. 한가지 답을 낼 수 없는 고민스런 질문을 던집니다. 실제로 일이 일어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제논의 역설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할 거라고 말했는데, 당신이 그와 같은 운명에 처했다면 행복하겠는가? 정답 없이 그저 주관만 있는 질문들이라 난감할 따름이지만 자신의 답을 끝없이 의심하고 생각을 바꾸면서 자신만이 아닌 남도 사유할 수 있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6. 소재별로 철학적 논제를 풀어나가는 전개는 전부터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철학 입문서'의 형식입니다. 하지만 철학이란 놈이 늘 그렇듯이 한 소재가 다른 소재와 완전 별개는 아닙니다. '신'의 소재만 해도 인식과 지식의 한계 및 범위, 신학, 자유의지, 윤리학까지 여러 방면에 걸쳐 있거든요. 전체적인 사고 틀은 비슷한데 소재별로 장마다 이야기가 따로 나오니 이야기의 수렴이 힘들고 조금 난잡한 편입니다.


7. 그럼에도, 이 책, 무지 재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딱딱한 철학사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소설형식을 취하기에 읽는 재미도 있고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수많은 철학 논제와 사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재밌게 접하기, 제 독서론이기도 합니다. 재미는 어떤 것이든 시작에 있어 정말 큰 장점입니다. 음식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에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장마다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책인데 짧고 서투르게 다루니 책의 재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네요. 여튼, 모두 모순과 역설의 세상에 빠져보시겠습니까?


8. 추가로, '다른 출판사', 꽤나 멋진 곳입니다. <철학 쑈>나 <13가지 질문>, <소설쓰기의 모든 것>등 정말 좋은 책들을 뽑아주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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