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75호 - 2013.여름 -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문학동네 |
아저씨
_오은 지음
앞장서서 손을 들다가
두 손 드는 날이 많았따
사이사이
나이가 들었다
가방은 커지고
머리는 비어가고
사이사이
심장이 뛰었다
넣을 게 없었다
뺄 것도 없었다
나이 주름 흰머리
사이좋게 늘어가는 것들이 있었다
책은 쌓여가고
기억력은 바닥나고
수첩에 적는 글씨는 점점 커지고
수첩에 적힌 글씨는 점점 작게 보이고
허름한 식장에 혼자 들어가는 일이
일도 아닐 때
그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때
수제비를 주문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안경을 코허리까지 내려쓰고
신문을 읽으며 혀를 끌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말이 앞서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면
어김없이 뒤가 보였다
수제비 속에 든 오색 수세미처럼
빨간만장 파란만장한
뒤가 따라왔다 뒤따라왔다
웃음 용기 전화번호
꼴좋게 줄어드는 것들이 있었다
입에 침을 잔뜩 발라 거짓말을 해도
입술은 언제나 튼 상태였다
수제비 한 점을 넣고
순순히 입을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차진 밀가루는 혀에서 살살
깊은 내력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만 나만 가만
꿀꺽
가방을 두고 나왔다
머리는 쓰지 않았다
아, 저…… 씨!
_계간 문학동네 7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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