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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by 양손잡이™ 2014. 5. 10.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지음/민음사



046.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글쓰기 교양 수업에서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는 과제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영국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바람이 많아 특유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와 '다아시'라는 조금 이상한 이름, 엘리자베스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의 미모만 떠오른다. 영화를 본 직후 책을 빌렸는데 재밌게 읽었음에도 리디아와 위컴의 야반도주밖에 머리에 남지 않았다.


  저번달에 고전 읽기 방법을 바꾼 후로 첫 책이다. 위키 문서 기준으로 <1984>와 함께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주요 10개 출판사 중 9개) 우연히도 고전 함께 읽기 모임에서 이 책을 골랐다. 크레마샤인이 맛이 가는 바람에 아이패드로만 봐야 하나 걱정하다가 그냥 종이책을 샀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는 민음사판 말고 가장 아끼는 열린책들판.


  <오만과 편견>이 시대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을 보면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이란다. 하지만 그런 걸 알 게 뭐냐, 나는 19세기는 커녕 지금의 사실주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거창한 문학사적 의미를 떠나 수많은 플롯이 존재하는 지금에도 매우 재밌는 로맨스 소설이다. 영화, 드라마, 연극, 그리고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까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점에서 원작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라고 하듯 <오만과 편견>도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한다.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라는 첫문장은 결혼을 통하여 신분 계층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던 당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딸들의 결혼에 목매면서 시종일관 교양 없음을 보여주는 베넷부인부터 놀기를 좋아해 파티 다니기를 밥먹듯이 하는 리디아와 키티, 애정보다 미래를 택한 샬럿까지 많은 인물을 통해 소설이 표현한 시대의 여성의 면을 은근히 비춘다. 그외에 콜린스나 빙리 양, 캐서린 부인 등 다른 인물도 행동과 말투로 시대의 표면을 자연스럽게 풍자해내는 점도 눈에 띈다.


  그런데 6년만에 다시 읽은 책에서 의문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다시와 위컴에 대해 오해하는 바를 풀어쓴 장문의 편지를 읽은 엘리자베스는 이후 자신이 가졌던 편견을 부끄러워하고 다아시의 청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자, 여기서 심히 의심되는 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여는 이유가 사람을 잘못 판단했고 그때부터 진짜 다아시의 품성이 보여서일까, 자신의 오판을 보정하기 위한 심리적 기제일까, 다아시의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오면서일까. 급변하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도 나이가 먹으니 캐릭터가 다르게 보이나보다. 아아, 엘리자베스도 커서 보니 은근히 속물기질이 있었다. 실망이야. (심리적 기제 때문에 감정이 증폭된 것으로 본다)


  책은 네 커플이 결혼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허나 콜린스-샬롯 부부는 애정보다 미래를 택한 결혼이고 위컴-리디아 부부는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남편의 애정이 진작에 사라진 결혼이다. 신분상승을 원하는 이들, 그저 가정이라는 존재를 원했던 이들은 돌고 돌아 다시 베넷 부부와 같은 가족을 만들 것이다. 베넷 씨는 부인을 그리 사랑하지 않고 속으로 비난할 정도고 다섯의 딸 중에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가장 아낀다.(사실 둘만 아끼는 것 같다. 은근히 무서운 아저씨다) 아무리 사실주의 문학고 소설의 묘사가 그 시절을 그린다지만 과연 애정 없는 결혼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라는 걱정이 된다.


  200년 전 소설이 지금까지 재밌게 읽힌다는 건 소설에서 그린 인물과 사건이 그때뿐 아니라 지금에도 충분히 공감가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이지 않은가. 사랑보다 돈을, 지위를, 가문을 선택한, 사랑을 빙자한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만 혼탁한 세상에서 진짜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건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은 적당한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아, 물론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완성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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