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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by 양손잡이™ 2014. 5. 16.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시공사



049.


* 추리소설 특성 상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머리에 필터 따위 없습니다.


  사놓은 지 6개월만에, 드디어 읽었다. 책장 깊숙히 어딘가 박혀 있다가 가벼운 독서가 필요한 찰나 우연히 보여 꺼내들었다. 500쪽의 책을 사흘 걸려 읽었으니 꽤나 빠르다.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나 운동을 가려고 다짐했건만 결국 세벽 다섯 시까지 책을 못 덮어서 이번주에는 운동을 못 갔다. 한번 펴면 웬만해선 덮을 수 없는 흡입력을 가진 책이다.


  책은 '춤추는 피에로의 수수께끼'라고 제목 붙혀진 짧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 북으로 향하는 기차를 비춘다. 객차에서 피에로가 흥얼거리며 돌아다닌다. 몇 분 뒤, 총소리가 들리더니 화장실에서 자살한 피에로의 사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차장이 문을 닫은 지 단 몇십 초 동안 시체가 사라졌다.


  뒤이어 본 이야기로 들어와, 한 부랑자 노인이 등장한다. 지하철에서 하모니카로 구걸하던 노인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한 가게에서 땅콩과 말린 찰떡을 산다. 400엔을 냈지만 이번 달부터 12엔의 소비세가 더 붙는다는 여주인과 실랑이를 하다가 여자를 쓰러뜨린다. 그런데 여자의 왼쪽 가슴에 칼이 박힌 것 아닌가. 노인은 12엔의 소비세 때문에 여자를 살해한 것이다.


  사건을 맡은 형사 요시키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소비세 때문에 다투다가 싸움으로 발전해 여자를 죽인 것도 아니고 준비한 듯이 칼로 찔렀다. 그런 칼은 부랑자가 들고 다니기에 어색한 물건이다. 다른 형사들은 노인이 치매에 걸렸다고 하지만 요시키가 보기에는 노인은 분명 정신이 말똥한 사람이다. 요시키는 노인의 과거를 조사할수록 그가 이런 범행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소설을 쓸만큼 지적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노인은 여자를 왜 살해했는가?


  딱 봐도 범인은 나와 있다. 50쪽도 되지 않아 노인이 살해범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기발한 발상>은 '왜?'가 중요한 소설이다. 요시키는 노인의 과거를 파헤칠수록 점점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일본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는 과거의 악령과도 같은 것이다. 이 진실로 <기발한 발상>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범주에 포함된다.


  노인의 과거를 훑다보니 전혀 연관되지 않은 사건이 따라온다. 노인이 감옥생활을 하던 때 쓰던 소설이 사실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은 교묘한 트릭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의 향기를 띄기도 한다. 이 책은 사회파와 본격의 교집합에 서 있다. '어떻게'(본격)와 '왜'(사회파)가 아주 적절히 섞여 읽는 데 재미가 있을 뿐더러 결말에 이르러서는 가슴 속에 무거운 응어리가 느껴지는, 상반된 매력을 가진 책이다. 다만 1989년에 쓰인 책이어서인지 트릭이 다소 무딘 것이 흠이다.


  사건의 구성과 설계 외에 작가의 필치도 뛰어난 편이다. 풍경묘사도 좋지만 노인이 쓴 네 편의 단편소설은 냉혹한 내용에 비해 소름끼칠 정도로 무덤덤하게 쓰여져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은 마쓰모토 세이초 이후 사회파 미스터리의 포문을 새로 연 시마다 소지의 대표작이라는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물론 읽는 재미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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