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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소소한 풍경 - 박범신

by 양손잡이™ 2014. 6. 5.
소소한 풍경 - 7점
박범신 지음/자음과모음(이룸)



052.


  영원한 '청년' 작가라 불리는 박범신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동생에게 <은교>와 <비즈니스>를 선물하고 <소금>을 가지고 있지만 여태껏 읽어보지 않았다. 왜냐고? 그의 이름에서 고루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짧은 경험이지만 한국문학의 '노장' 작가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고루하고 꼬여 있다. 고 최인호 작가가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다. <촐라체>, <고산자>에서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근래에 영화 '은교'를 봤을 때 놀랐다. 노교수 이적요가 어린 은교를 사랑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이 영화에서 '노(老)작가' 박범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젊은과 늙음, 욕망과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구식 감각(<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느껴졌던 감각이다. 다시 한번 고 최인호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이 아닌 젊고 가벼운 느낌으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사람들이 박범신을 '청년'작가라고 칭하는 이유를 살짝 엿보았다.


  <소소한 풍경>은 이번에도 사랑 이야기다. <은교>에서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사랑이다. 전문 용어로... 흠흠, 알아서 생각하시라. 그 사랑이 플라토닉 러브였다면 그나마, 그나마 어느정도 용인이 됐을텐데 읽어보면 상세한 묘사가 없을 뿐이지 엄청난 육체적 사랑이다. 그렇다. 박범신은 사람들이 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을 잘 포장하여 내놓는다.


  <은교>와 <소소한 풍경>이 3류 포르노처럼 저속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작가의 사유의 깊이다. 겉으로 본다면 세 남녀의 육체적 행위는 손가락질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박범신은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사랑이란 단어로 재단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반문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 말이 가진 폭력성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과시욕이 합쳐져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니면 안돼, 넌 내 거야라는 말은 오직 '나와 너'라는 폐쇄적인 관계망에서 서로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일 뿐이다.


  세 남녀는 '사랑한다', 'sex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덩어리진다'고 한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독점적 욕망으로 서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지탄받지 않는다. 또한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둥 남의 기억과 추억까지 소유하려는 모습에서 사랑은 '정보화'에 따른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에게 덩어리지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깊은 이해였던 것과 다르게 말이다.


  이참에 금기된 사랑에 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우선 <은교>와 <롤리타>를 비교해보면서 말이다. 과연 '진짜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감정을 단순히 사회적, 정신적 질병으로만 취급해야 할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사랑은 국어사전이 말하는 몇 개의 정의만으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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