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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by 양손잡이™ 2014. 6. 14.
카탈로니아 찬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민음사



054.


  언제나 그렇지만, 리뷰따위의 타이틀은 버리고 잡담을 위시한 발췌문 모음이다. 왜냐고?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인 스페인 내전 당시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파시즘, 사회주의, 공산주의(오, 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같은 건줄 알았는데!), 무정부주의, 노동당(오, 전국노동자연맹과 노동자총연합은 도대체 왜 구분하는 것인가!) 우파, 좌파, 프랑코…. 나를 좌절하게 만든 단어들이다.


  오웰 스스로 사족이라 불렀던 5장과 11장은 당시의 역사와 정당간의 다툼, 언론 기사 등을 다룬다. 다른 장에 비해 지루하지만 배경지식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걸 읽어도 도무지 모르겠는 걸 어떡해. 그리하야, 역사에 관해 무지한 나로선 사실주의에 입각한 <카탈로니아 찬가>(이하 찬가)를 르포로서 평할 수가 없다.


  어떤 고전이나 마찬가지로 <찬가> 또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배경이 되는 1935년 후로 8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역시, 언론이다. 오웰에게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89쪽) 적군을 헐뜯고 아군의 사기 증진(사실 사기증진이랄 것도 없다)을 위한 '공작'은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다.


  언론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날조한다. 의용군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졌다.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40쪽) 하지만 그들은 전시에서 수준이 그리 높진 않았다. 나중에 의용군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훈련과 무기부족으로 인한 결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등주의적 체계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된 것이다.


  여러 매체의 보도는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견야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215쪽) 이러한 보도는 편견을 조성한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들어본 영국인은 많지 않은 반면 영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적폐가 그 본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웰을 분노케 한 것은 전쟁이 무엇보다도 정치적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66쪽) 파시즘에 대항하여도 모자를 판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노동자연맹(연합? 둘을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 두 단체를 구분하지 못해서다)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안달이 났다. 바르셀로나 시가전 이후 공산당은 선전을 통해 통일노동자당을 파시스트의 앞잡이로 몰아간다. 이에 수많은 당원들이 잡혔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갔다. 이런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전투 중에 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277쪽)


  이렇게 발췌문 몇을 묶어놓고 보니 뭔가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아직도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언론은 아무도 믿지 않을 사진을 찾거나 합성해서(오, 이런!)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고선 아군이 하는 일에 무조건, 무논리적으로 편든다. 속보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실치도 않은 일을 단언하듯 말하고, 언론 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저 '알 권리'만을 외치며 자극적인 발언만 외쳐댄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언론의 폭력성을 말했다면, <찬가>는 국가와 이념적 측면을 강조한다. 국가와 이념을 위해 개조된 입은 사악한 지능을 가진 거대한 존재가 도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우리 소시민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고 그리 외쳐도 내 한 표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지레 포기하곤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쓴 오웰도 사실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스페인으로 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념조차 잘 몰랐다. 오웰은 좌파의 입장이었는데 그가 속했던 것은 통일노동자당이었다. 스페인을 떠나고 싶은 진짜 동기는 주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단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꼈을 뿐이다.(256쪽) 심지어 제대증을 얻자 관광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261쪽) 스페인에 처음 왔던 때 보이지 않던 거리, 오래된 돌다리, 사람들의 수레바퀴, 재미있는 반지하 상점들을 인식한다. 앞에서 느껴진 분노와 환멸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었을 했습냐는 질문에 오웰은 식량만 축냈습니다, 라고밖에 답하지 못했다.(96쪽) 그는 죽지 않기 위해 스페인을 떠났고 (그의 입장에선) 파시즘에 대한 대항에 아무런 힘도 싣지 못했다. 그 후 오웰은 자신의 재능인 글쓰기를 통해 분노를 토해냈고 이는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책으로 탄생,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과 경각심을 불어주었다. 전장에서는 무능(역시 그의 입장에서이다)했던 오웰이지만 결국 진실을 호도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자, 그러면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해봐야 한다. 분노가 단순히 분노로 끝나는 순간,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악의 편이 되고 만다. 우리 일반인들이 오웰처럼 큰 영향력을 미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은 우리지만 하나의 불씨라도 만들 수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세상에 자신이 티끌만한다고 주눅들 필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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