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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눈먼 자들의 국가 - 문학동네 편집 (문학동네, 2014)

by 양손잡이™ 2014. 11. 7.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외 지음/문학동네



093.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나마 아는 사실을 풀어쓸만큼 재주가 있지도 않다. 그래서 간단한 소회만 남긴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편 건,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지 정확이 200일이 된 날이었다. 연인들이 그토록 챙기는 200일 기념일과는 달리, 아픈 소식을 기리는 특별한 날을 머리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티비에서 흐르는 영상을 쳐다보지 않고 꾸역꾸역 밥을 넘기기에 바빴다.


  사실 외면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눈물 흘리기 싫다고, 지겹다고, 그리고 무섭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눈을 감고 귀를 막기 일쑤였다. 이제 무엇이 주(主)가 된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해졌다. 사실, 그랬으면 안됐는데 말이다. 사고가 나서 자신들이 위험에 처한줄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살기 위한 이기심이 아닌, 남겨질 자들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였다.


  미안하다는 영상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소설가 황정은이 쓴 글 속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봤을 때 눈물이 흘렀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다 큰 남자가, 그것도 눈물 몇 방울 찔끔 흘린 게 아니라 울음을 참기 힘들어 꺽꺽거렸다니, 이런 추태가 다 있는가. 울음은 그칠 수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감정을 추스르고 가까스로, 글을 계속 읽었다.


  표제작인 소설가 박민규의 ‘눈먼 자들의 국가’는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낭송되었다. 일부러 찾아듣지 않았기에(바로 위 문단의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음이다)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차분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박민규의 전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어떤 의미로 평이하다. 감정을 거의 배제하고 사실관계(라고 추정되는 사실)로만 쓰인 글이기에 더욱 가슴 저민다. 이번 일을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 글이 빛을 발한다. 차분함을 가장한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통킹만 사건을 언급하며 중의적 표현을 하는 위트도 발휘한다.


  니체를 인용한 시인 진은영의 글도 생각해볼 만하다. 니체는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리라는, 상식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말을 한다. 슬픔을 같이 이해해주는 것이 연민 아니던가? 하지만 고결한 자와 비교했을 때 연민의 정을 가진 선한 자는 자기 역량의 최소치만을 사요한다. 니체는 이런 도덕주의자들을 “마비되어 더이상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그런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보고 느끼고(사실 느낀다고 믿는) 눈물 흘리는 이들이 무능력함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황종현은 사고 이후 한참 유행했던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내보인다.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사멸하지 않았음을, 오히려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노래다. 모종의 순진성을 띈 이 노래를, 임형주는 미성으로 순수하게 부르지만, 사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당한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불분명해서 당혹스럽다고, 황종현은 말한다. 우리는 이 노래를 함께 듣고 대중의 슬픔에 동참하여 그들을 편안히 보내주려고 자신을 설득하는 건 아닌가? 니체가 말한 연민을 갖고 말이다.


  책의 앞은 작가들로, 뒤는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다소 읽기 쉬운 글들로 몰입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 뒤, 머리를 식히고 차분한 시각으로 세월호를 보는 형식을 취한다. 250여쪽이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안에 담긴 무게는 세월호에 마구 적재된 짐들과, 아팠던, 그리고 아픈 이들의 마음에 비하지 못한다.


  박민규의 글 마지막을 곱씹으며 마치자.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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