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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베스트셀러의 역사 -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까치글방, 2014)

by 양손잡이™ 2014. 11. 20.
베스트셀러의 역사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지음, 이상해 옮김/까치글방



096. 베스트셀러의 역사 -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까치글방, 2014)


베스트셀러에 대한 간단한 소고.


1. 사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에게 베스트셀러를 권하면 다들 손사래를 친다. 자기는 많이 팔리는 책보다는 나만의 책을 읽겠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맞다. 대중에게 잘 읽히는 대부분의 책은 다소 읽기 쉬운 면이 있다. 프랑스 콩쿠르상도 처음에는 많이 팔리는 책을 배제했다고 한다. 많이 팔린 책은 그들에게 실패작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이런 의견이 일면 수긍가기도 한다.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라든가 가계부 쓰는 법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있는 목록을 보자니, 대체 이 사람들은 뭘 보고 이런 책들을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와 반대도 있다. 대중이 잘 받아들이는 책은 과연 수준이 낮은 책인가? 베스트셀러는, 엘리트 순혈주의와 대중 중심주의를 적절히 혼합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당히 고귀하고, 적당히 천박(?)한.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2. 베스트셀러의 장점은 지금 이순간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힐링류가 판치던 시절에는, 분명 우리가 힐링을 간절히 바라고 무언가 바로잡아지길 바랐다는 점이 확연히 보인다. 또한 비교적 쉬운 책 읽기가 가능해 독서에 첫걸음을 딛게 도와준다.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이라면 그만큼 대중의 시야에 맞는 책이란 뜻이고, 이는 누구든 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그냥 책 고르기 쉽게 만들어준다. 딱히 고민할 필요 없이 남이 고른만큼만 딱 고르면 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진짜 엘리트라면, 베스트셀러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게 아니라, 그에 관련된 더 좋은 책을 추천해주면 된다.


3. 베스트셀러의 단점은 여럿 있지만 저질스런 상품화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만드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특히 요새는 마케팅이 판치는데, 이는 한번 베스트셀러에 들면 노출효과로 계속 팔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베스트셀러 목록에 책을 올려놓고 싶어한다. 사재기가 가장 저렴하면서도 잘 먹힌다. 나처럼 책을 가늠하는 눈이 낮은 사람은 베스트셀러라는 존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책 좀 읽는다는 말을 듣고는 싶은데 주변의 많은 이들이 한 책을 샀다고 한다면 나도 거기에 질새라 책을 사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책은 누가 샀는지는 알 수 없고 그저 판매량에 기인한 베스트셀러 목록으로만 보여지기에, 결국 나는 그 목록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같은 소비자들이 많기에 한번 목록에 올라가면 쉬이 내려오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한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호기심에서라도 그 책을 한번 더 쳐다보기 마련이다.


4. 베스트셀러 목록은 책을 그저 그런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문학적 삶을 돈만 지불하면 누구나 끼어들 수 있는 스포츠 경기로 제시해버린다. 누가 좋은 책을 출간하느냐가 아닌, 누가 많이 팔리는 책을 내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베스트셀러를 쭉 보면 알겠지만, 많이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고 좋은 책이라고 많이 팔리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 위해 매번 똑같은 인물, 비슷한 배경과 주제, 사건을 가지고 책을 내봤자 잠깐일 뿐이다. 그렇게 ‘생산된’ 베스트셀러는 신속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결국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이런 특징이 가장 강한 작가는 기욤 뮈소다. 판타지 멜로 장르를 널리 퍼뜨린 건 정말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이는 내가 연애를 안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5.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마케팅의 저력을 강하게 보여주었다면, 요즘에는 규모가 큰 쇼보다는 작은 입소문이 꽤나 강하다. 트위터나 블로거들이 유명세를 타니 그들에게 서평을 맡기는 일도 파다하다. 영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드라마셀러나 스크린셀러 등도 등장한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툴레인 어쩌고의 책은, 사실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동화책을 읽을 시간에 고전이나 인문학서적을 하나라도 더 쳐다보리라는 굳건한 의지만 다져주었다) 마케팅은 더더욱 마이크로화해져서, 요샌 팟캐스트도 출판계에 꽤나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별히 기억나는 예. 빨간 책방에서 다룬 이언 매큐언의 <속죄>인데, 알라딘에서 이를 노린 건지 아니면 그냥 때가 맞았던 건지 딱 반값 세일을 하면서 출간된 지 몇 년 된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서 한참 논 적이 있다. 모순적이지만 이번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도 역시 빨간 책방에서 다룬 책이다. 세일즈 포인트가 2,000을 조금 넘긴 것으로 보아 빨책의 영향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 역시 이동진의 힘이란. (음?)


6.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독자가 책을 고르는데 주관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소수만 읽던 좋은 책을 읽게 만들거나 적어도 사게 만든다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속죄>는 분명 이언 매큐언의 걸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가 유명세를 탔어도 책은 잘 팔리기에는 다소 대중적이지 못했다. (이는 판형과 편집, 그리고 책의 두께가 한몫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참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책이오, 하고 이동진과 김중혁이 추천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책을 한번이라도 더 들춰보게 된다. 물론 소문이 만드는 파급력은 엄청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좋고 나쁘게 확연히 갈릴 수 있지만, 독자가 생각하던 책의 진입장벽을 조금 허무는 꽤나 큰 장점이 있다.


7. 그런데 이런 추천사가 독자를 속물로 만들 때가 있다. 속물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고 사유하거나 탐미하려는 생각이 적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책을 산다. 특히 엘리트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책을 사서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책장에 책등이 잘 보이게 예쁘게 꽂아둔다든가, 근사한 식사 자리에서 화제에 올리기 위해 그저 장서해둘 뿐이다. 독서에 대한 기만이고, 자신에 대한 확실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독서에 대한 자기방어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기사에서 말하길, 고전은 지금 읽는 책이 아닌 ‘다시 읽고 있는 책’이다. 절대 처음 읽는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러면 남들이 자신을 엘리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리라 여기기에.


8. 호기심과 속물주의가 적절히 섞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절대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이는 스테디셀러도 포함되는데, 사실 스테디셀러라고 해봐야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아마 많은 가정집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5%도 채 안된다고 한다. <시간의 역사>가 가진 불명예는 이번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되면서 옮겨가지 않았을까.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 책을 사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도 샀다) 800쪽이 넘는 이 책,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이 책을 ‘마르크스보다 크다(Bigger than Marx)’고 광고했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얼마나 읽었을까.


9. 베스트셀러에 대해 짤막한 생각을 써봤는데 글쎄, 결국 마무리는, 알아서 잘 봐라다. 베스트셀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읽든 안 읽든 어차피 독자 마음이다. 읽으면 어떠리 안 읽으면 어떠리, 읽는다고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맘 가는대로 읽으면 장땡이다. 어차피 책이야 읽는 재미만 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거기서 교훈을 얻는 건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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