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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마음산책, 2022)

by 양손잡이™ 2022. 11. 7.

한국의 오래되고 전통있는 영화잡지 ‘씨네21’의 김혜리 기자의 새 책이다. 2017~2020년에 쓴 칼럼과 몇 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20대 중후반부, 독서 외에 취미를 갖고자 영화관을 뻔질나게 다녀서 영화를 많이 봤다고 생각해 이 책을 폈다. 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서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패션 영화광(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얄팍하지만…)이었던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를 가져와본다. 본 영화가 많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 반 이하라면… 영화부터 봐야 한다. 내가 그랬거든. 목차만 보면 익숙한 제목이 많은데, 실제로 본 영화는 반밖에 안된다. 게다가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서 기억에 제대로 남지 않았다. 줄거리를 소개해주는 부분도 거의 없으니, 웬만하면 영화를 보길 권한다.

 

 

1. 부치지 못한 헌사
이자벨 위페르 / 베네딕트 컴버배치 / 톰 크루즈 / 폴 러드 / 틸다 스윈튼 

2. 각성하는 영화 
문라이트 / 레이디 버드 / 미성년 / 페르세폴리스 / 스토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플로리다 프로젝트 

3. 욕망하는 영화 
결혼 이야기 / 내 사랑 / 팬텀 스레드 / 레이디 맥베스 / 엘르 / 매혹당한 사람들 / 조용한 열정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4. 근심하는 영화 
옥자 / 퍼스트 리폼드 / 킬링 디어 / 미드소마 / 겟 아웃 / 어스 / 툴리 / 그녀들을 도와줘 

5. 액션과 운동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존 윅3: 파라벨룸 / 라이프 오브 파이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 너는 여기에 없었다 

6. 시간의 조형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패터슨 / 고스트 스토리 / 로마 / 아이리시맨 / 덩케르크 / 토리노의 말 

7. 팽창하는 유니버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 / 2012년 할리우드 속편들 / 원더우먼 / 조커 / 로건 /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 블랙팬서 / 캡틴 마블 / 어벤져스: 엔드게임 /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 알라딘(실사)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아쉽게도 나와 많이 다르다. 저자는 영화의 재미 측면보다 의미에 힘을 실는 타입이다. 좋게 말하면 평론가, 나쁘게 말하면 현학적인 학자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단적인 예다. 이 영화는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평론가에게는 좋은 평을, 팬에게는 나쁜 평을 들었다). 저자는 ‘라스트 제다이’를 지극히 평론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오래된 시리즈물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이야기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 균형을 맞추기란 정말 어려운데, 아쉽게도 ‘라스트 제다이’는 기존 팬에게는 큰 실망을 남겼다. 시대적 의미를 담느라 기존 시리즈의 큰 줄거리에서 이탈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영화의 의미에 점수를 주지만, 대중은 이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PC가 들어갔다 뭐다 비판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 그래, 상업영화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하자가 있지 않는 한 재미와 완성도가 1순위인 것이다. 이는 저자가 ‘블랙팬서’와 ‘캡틴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일치한다.

그래도 영화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저자의 시각과 스펙트럼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엄청나게 편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옹졸한 시선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 무엇보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를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묘사하는 마음
“어떤 리뷰는 영화만큼이나 감동적이어서 그 자체로 작품이다.” “조용한 잉크 방울이 떨어져 스미듯 부드럽게 펼쳐지는 글”. “프레임의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영화기자.”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영화의 미덕을 사려 깊은 태도로 전해온 〈씨네21〉 김혜리 기자. 온라인에서는 단정한 사유와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상찬하는 리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일반 독자뿐 아니라 문학평론가 신형철, 소설가 윤성희, 영화평론가 허문영 등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저자들 사이에서도 김혜리의 글은 단연 영화 글쓰기의 전범으로 회자된다. 이토록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그가 5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 『묘사하는 마음』은 2016년 이후 팟캐스트를 통해 그의 목소리로만 영화 이야기를 접했던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씨네21〉의 개봉작 칼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2017~2020년 연재했던 글과 그 전에 쓴 ‘틸다 스윈튼’ 배우론 외 몇 편의 에세이를 더해 엮은 이 책은, 여전히 영화라는 대상을 주어로 놓고 그 그림자를 좇는 겸손한 태도로 빛난다. 볼거리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범람하는 시대에 취향을 전시하기보다 영화라는 창작물이 스스로에게, 또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무엇일까를 찬찬히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그에게 영화의 ‘묘사’를 추동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영화의 ‘이목구비’를 살펴 사람들에게 그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전망 좋은 언덕’처럼 해석에 이르게 된다고 고백한다. 내가 영화를 따라다니며 한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돌아본다. 그나마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단어는 ‘묘사’다.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사진 찍기 원하고 귀에 감기는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려 한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_11쪽, 책머리에 『묘사하는 마음』은 1부의 배우론 「부치지 못한 헌사」로 시작해 영화의 주제로 가름한 부(2부 「각성하는 영화」 3부 「욕망하는 영화」 4부 「근심하는 영화」), 나아가 형식에 천착한 부(5부 「액션과 운동」 6부 「시간의 조형」)를 거쳐 201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형을 다룬 「팽창하는 유니버스」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나라를 경유하는 총 53편의 글들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긴밀하게 배치되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다음 영화를 사유하게 하며 촘촘한 고리를 이룬다. 밀도 높은 글 사이사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비유와 은근한 유머는 독자를 책의 마침표로 이끄는 쉼표다.
저자
김혜리
출판
마음산책
출판일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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