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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사회평론, 2022)

by 양손잡이™ 2022. 12. 5.

1. 한 고전 게임의 엔딩이 생각난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챔피언에 오른 권투선수는,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목표를 잃었다. 목표가 사라진 주인공은 결국 ‘허무’를 느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결국 챔피언은 권총 자살을 한다.

 

 

2. 허무란 무엇인가. 구글 검색을 해봤다.

 

- 아무것도 없고 텅 빈 것.

- 세상의 진리나 가치, 또는 인간 존재 자체가 공허하고 무의미한 상태.

 

예전에는 첫번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현재 우리에게는 오로지 두번째로만 다가온다. 분명 목표를 이루고 성과를 달성했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은 텅 빈 느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구멍은 한없이 커져만간다. 종종 느껴지는 서늘함. 잊으려 할수록 커지는 마음. 우리는 분명히 허무한 세상에 살고 있다.

 

 

3.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생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다니. 이럴 때 두려운 것은, 화산의 폭발이나 혜성의 충돌이나 뇌우의 기습이나 돌연한 정전이 아니다. 실로 두려운 것은, 그냥 하루가 가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시간이 흐르고, 서슴없이 날이 밝고, 그냥 바람이 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_19쪽

 

아직 달성한 목표도 없건만 허무를 느끼곤 한다. 이럴 때 말이다. 황금 같은 주말. 간만에 찾아온 휴식 시간을 그냥 날릴 수 없다. 평일에는 피곤하다고 못한 일 - 청소, 진득한 독서, 밀린 독서노트, 영화 - 을 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피로에는 장사 없다지, 늘상 그렇듯 늦잠을 자고, 게으름은 게으름을 불러 유튜브 뒤적이고 게임을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 나는 대체 뭘 했지, 허무하다. 이런 작은 허무가 쌓여 삶 전체가 허무하게 느껴지고 만다.

 

 

4.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허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한없이 갈망하면 허무가 생길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허무함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시간 속에서 필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유한하며,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77쪽)을 너무나도 절실히 안다. 부와 명예 모두 한때의 영광일 뿐이다. 공수래 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인생. 생에서 많은 성공을 일궈냈다 한들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셈이다.

 

 

5.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 았지?  _288쪽

 

저자는 인생을 보는 관점을 바꿔보자고 말한다.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인생을 즐기려고 노력해보자고. 성적과 자격증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순간을 좋아해보자고. 언제 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보자고(103쪽).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나는 절대 하지 못할 것 같다. 경쟁을 포기하면 사회에서 도태된다. 실패의 쳇바퀴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사는 동안 절대 떨칠 수 없는 허무. 이 지긋지긋한 놈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6. 번외로, 책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조금 해본다. 글이 전체적으로 현학적이다. 뜬구름잡는 느낌이다. 실제 삶이 투영됐다기보다는 학자의 입장에서 글을 풀어쓴 느낌이다. 적벽부니 명화니 해도 모든 개념이 관념적으로만 느껴진다. 허무라는 개념을 다루다보니 글마저 허무에 잠식당해버렸을까? 김영민 교수의 책 중에 가장 아쉬웠다. 아이러니하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글이 가장 좋았다는 것이 함정.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들려주는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 북송시대 문장가 소식의 「적벽부」를 모티프 삼아, 인류의 보편적 문제인 ‘허무’에 대한 오래된 사유의 결과물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재해석했다. 허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죽음과 해골이 등장하지만, 김영민식의 유머와 통찰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허무를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 이라면 그의 글을 통해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천천히 읽을수록, 곁에 두고 오래 음미할수록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이번에는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인문 에세이를 펴냈다. 앞선 산문집에도 ‘허무’라는 테마는 등장했지만, 오로지 인생의 허무에 대한 그의 사유를 담은 것은 이번 책이 처음이다. 남녀노소 나이불문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어떻게 했을까? 허무의 근원을 깊이 파고들거나 건너뛰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극복했을까? 김영민 교수는 “인생은 허무하다”고 직설한다. 허무가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면서도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선언한다. 도대체 허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 저자 김영민은 인간에게 희망, 선의, 의미가 언제나 삶의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탈진 상태이거나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거나 텅 비어버린 이들에게 희망과 선의, 의미를 가지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기에 저자는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는 우리에게 허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저자
김영민
출판
사회평론아카데미
출판일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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