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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이야기

음악이 돈다

by 양손잡이™ 2011. 5. 23.
  "언니야, 매니저 오빠가 무대로 올라오랴."
  한 여자가 열린 문 틈 사이로 빠끔히 머리만 내밀고 말했다.
  "무슨 일이래."
  방안에 있던 여자가 걸린 옷들을 보며 무심히 말했다.
  "마이크 뭐라고 하던데."
  말을 마치자 머리는 밖으로 쏙 나간다.
  "춘례년, 지가 좀 가볼 것이지."
  그러자 춘례가 다시 목을 디민다.
  "나 사장님 방에 간다우."
  춘례는 뭐가 좋은지 방을 나가며 시끄럽게 웃는다.
  그녀는 저녁에 있을 쇼를 위해 옷을 고른다. 어제 입었던 은색 반짝이 옷은 이미 흥미를 잃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파란색과 금색 중에 무엇이 예쁠까 비교해본다. 목에 걸칠 것도 어는 게 제일 잘 맞는지 재본다.
  털이 부슬거린다. 곳곳에 털이 빠진 자리를 주위의 것들로 메워본다. 옆 걸이에 좋은 것들이 많지만 그녀는 가끔 그것들을 쳐다볼 뿐 헤어진 털들을 가리고만 있다.
  "얼른 나오라니까."
  한 사내가 춘례와 같이 열린 문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무어 하고 있어."
  "옷 좀."
  그녀는 계속 털들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잠시 가벼운 침묵이 돈다. 두 번째 목도리를 만지던 그녀가 입을 연다.
  "무슨 일인데."
  남자는 문을 활짝 열고 문설주에 기대었다.
  "마이크 좀 봐달라고."
  맘에 드는 쌍을 골랐는지 그녀는 거울 앞에서 옷을 몸에 대본다.
  "그런 건 매니저 오빠도 할 수 있잖아?"
  그녀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옆모습을 본다. 매니저는 여전히 삐딱이 기대어 있다.
  "그래도 노래 부르는 사람이 해 봐야지, 마이크라는 게 또 그, 사람을 가리잖아."
  "아 그럼 춘례를 시키든가."
  그녀는 조금 성을 내며 옷을 내던진다. 매니저도 얼굴을 약간 찌푸린다.
  "춘례는 사장님 방에 갔어."
  "그럼 진짜 가수보고 하라든가!"
  "왜 이래!"
  매니저도 벌컥 소리를 지른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 하지만 여전히 숨소리가 크다.
  "알아서 해!"
  문이 세게 닫혔고, 그녀도 입을 꼭 다문 채 거울만 쳐다본다. 그녀의 얼굴에 분첩을 꾹꾹 누른다.
  한참 분을 삭이던 그녀는 결국 방을 나서 무대로 향한다.
  무대에는 나이 든 밴드맨들이 악기를 설치하고 있다. 그녀는 평소 서던 코러스 마이크를 지나 무대 중앙을 향한다. 마이크 옆에 서있던 직원은 그녀를 보고 무대를 내려간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내본다.
  "아아- 아아-."
  어느새 매니저가 무대 앞에 섰다. 그리고 불만스레 말한다.
  "그런 건 누가 못해. 노래 해봐, 노래. 높게."
  "음악이라도 좀 틀어주든지."
  그녀는 퉁명스레 대꾸한다. 매니저는 반주를 틀어주었다. 하지만 음악은 죄다 따로따로 흐른다.
  "이래서 그래. 한 달 안 돌렸다고 이러네…."
  그녀는 노래를 시작한다. 평소 좋아하던 트로트 곡. 살짝 살짝 엉덩이를 흔들며 리듬을 타기도 한다. 하지만 고음이 나오자 스피커는 쇳소리를 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매니저가 얼른 직원에게 기계 접촉부를 확인해보라 하였다. 직원은 쪼르르 달려가 이것저것을 뺐다 꼈다, 이리저리 돌려본다. 곧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다시 반주가 흐른다. 아까와는 다른, 매우 느린 음악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곧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낮게 깔리는 풍부한 저음. 파도처럼 일렁이며 요동치는 소리. 곧게 절정으로 치닫는 깔끔한 고음. 끊어질 듯 팽팽한 실처럼 긴장감 있는 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허공을 날아다니며 음표를 찍는다.
  고음처리가 매끄럽게 되자 매니저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하지만 곡의 절정부분에 이르렀을 때, 밴드맨 하나가 심벌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파열음은 장내에 크게 퍼졌다.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뜬다. 갑자기 보이는 앞의 모습에 약간 얼굴을 찡그린다. 그녀는 살짝 뒤에 눈을 흘기고는 바로 노래를 이어간다.
  그녀의 목소리가 흐르는 무대 뒤에서는 밴드맨들이 악기를 조율한다. 드럼소리가 쿵쿵 울린다. 기타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가끔 키보드도 웅웅거린다.
  무대 아래는 더 분주하다. 오랜만의 매장 오픈에 엉망이 되어있는 홀을 치우느라 모두 바쁘게 돌아다닌다. 직원들은 서로 시끄럽게 얘기한다. 가끔 의자가 떨어져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노래를 마친다. 그리곤 매니저에게 웃어 보인다.
  "괜찮지?"
  하지만 또 쇳소리가 난다. 매니저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시고 짜증이 올라온다. 바로 무대 위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는다.
  "야야, 고음 올라갈 때 찢어진다고 해서 멘트 할 때를 이렇게 하면 어쩌라는 거야."
  기계 옆에 서있던 직원은 다시 기계를 만진다.
  "아- 아까 좋았는데."
  매니저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고음을 내보라 한다.
  "여기-"
  그녀가 목청껏 노래의 한 구절을 내지르자 매니저는 바로 마이크를 뺏는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아아- 이제야 좀 괜찮네."
  매니저는 무대를 내려갔다. 그녀도 하릴없이 무대에서 내려온다.
  직원들과 이래저래 말하던 매니저는 다시 무대 위에 선다. 조명을 자신에게 맞추라 한다. 곧 매니저 머리 위에서 하얀 빛이 내려온다. 조명을 조정하던 직원이 오케이 사인을 내자 매니저도 얼른 무대를 내려온다.
  그녀는 홀 중앙 의자에 앉았다. 직원들이 바닥을 닦고 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조용히 무대를 바라본다.
  무대에 여전히 방향이 제각기인 음악이 흐른다. 매니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곧 색색이 조명들이 켜진다. 그것들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밴드맨들의 옷에 빛이 반사되어 더욱 역동적으로 보인다.
  중앙을 비추는 메인 조명이 꺼졌다. 매니저는 다시 뛴다. 그녀는 살짝 웃는다.
  빠른 음악이 실내를 돈다. 무대에 메인조명이 환희 든다. 흰 조명 안에는 아무도 없다. 홀로 서있는 마이크가 반짝인다.


 

음악이 돈다.
무대 위 흰색 옷 여인은
노래를 부른다.
 
하나 둘 하나 둘
아아- 마이크 테스트-
 
 
남자는 바쁘게 돌아다닌다.
밴드는 악기를 조율한다.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지만
장내는 시끄럽다.
모두 자신의 일에 집중한다.

하나 둘 하나 둘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음악이 돈다.
무대 위로 하얀 조명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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