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적으로 그렇게 재밌게 읽은 책은 아니어서 딱히 할말이 없다. 그렇다고 엄청 재미 없게 읽은 책도 아니어서 깔 말도 없다. 나에겐 되게 애매한 책이었.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이다.
출판사 여직원이 투고 작품의 순서를 뒤죽박죽 어그러트렸듯이 이 책도 시간 순서대로 맞춰져 있지 않다. 엉망진창 앞 뒤 왼쪽 오른쪽 가릴 것 없이 마구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작가가 정교하게 짜놓은 틀 안에서 어느정도 시간적 연대기가 그려진다.
소설을 읽으면 가장 먼저 느낄 것은 분명 이러한 특이한 형식일 것이다. 하지만 우주알을 언급하면서 시간에는 전후의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테드 창이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 바 있다. 물론 다른 층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긴 이 소설은 제목부터 신비스럽기도 하다. 당신의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니. 우주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세계를 조망하는 상상을 하니 우습기도 무섭기도 하다. 우리는 뭐든지 완벽하게 기억할 수 없고 자신의 기억을 역사책처럼 시간순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저 파편적이고 자그마한 기억의 조각들만이 여기서 팡 저기서 팡 그렇게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앞뒤 다 뒤엎는 소설의 형식이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잘 표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도 학창시절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알 수 없다. 소설 마지막 남자의 고백 편지에서는 학교폭력이 아닌 그저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옆에서 함께 있던 여자는 학교폭력이 의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처럼 제각각이라 객관적이지 않고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이야기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시간 때 순으로 나열했다면 엄청 단순한 이야기였을텐데 이렇게 이야기와 형식과 제목과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니 꽤나 근사한 소설로 탄생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신기하네.
- 저자
- 장강명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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