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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진짜 나는 누구인가?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by 양손잡이™ 2011. 12. 11.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9점
최인호 지음/여백


  이 얼마만에 읽는 요새 베스트셀러란 말입니까. 성격에 약간 뾰루퉁한 부분이 있어서 베스트셀러 하면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책은 발간된지 얼마 안 되어 구입한, 요새 베스트셀러입니다. 정유경 작가의 '7년의 밤', 황석영 작가의 '낯익은 도시'와 함께 샀었지요. 올해 여름에 산 책들을, 이제야 펴보고 있습니다. '7년의 밤'은 사정이 있어 일찍 보게 되었지만 나머지 두 책은 어쩐지 손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하여튼, 산 책을 모조리 읽자라는 마음에 책꽂이에서 책을 뺐고, 읽었습니다.

  중학교 때 작은아버지 생신 때문에 작은집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역사소설 <상도>를 잠깐 들춰보았습니다. 아직 어린 친척동생들은 지들끼리 컴퓨터를 하거나 부모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더군요. 장남인 저는 너무나도 멋있게 책을 읽었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1권을 다 읽었습니다. 집에 가면 도서관에서 다음 권을 빌려 보자, 라고 생각했건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결국 빌려보지 않았습니다. 그 <상도>를 쓰셨던 최인호 작가님의 최신간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깊이있는 독서를 하는 편은 아닙니다. 대부분 흥미위주의 소설을 읽고는 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문단의 어른들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기에 아직 '토지'나 '태백산맥'도 읽지 않은, 헛책책이일 뿐이지요. 그렇기에 최인호 작가의 전작들과 이 작품의 뭔가 다름을 느끼기는 불가능했지요.

  왜냐하면 최인호 작가의 모든 장편소설은 청탁받은 장편연재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의보다 타의로 시작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장편연재물은 특성상 매우 긴 호흡을 가지는데 이 책은 그에 비해 그나마 짧게 치고 빠지는 맛이 있다고 하네요. 암투병 중 자의로 집필을 시작한 소설, 작가는 정말 하고픈 말이 쌓이고 쌓이셨었나 봅니다.

  이야기는 K가 잠에서 깨어나며 시작됩니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다 귀가한 그는 눈을 뜨자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쓱 훑어보면 분명히 어제들과 같은 집안이지만 세세히 보면 그동안과 다른 어떤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 두꺼운 장편 소설은 K가 자신이 왜 이상한 느낌을 받는지,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매우 재밌었습니다. 종이를 넘기다보니 벌써 마지막 장이더라, 이런 느낌이었어요. 흡입력 하나는 가히 최고였습니다. 보통 낮보다 밤에 책을 읽는 걸 선호하지만 기숙사에서 쉬면서, 가장 졸립다는 식후 1시간 타임에도 책을 보았습니다. 물론 완파 후 이 이야기를 더 읽고프다거나 와 완전 재밌어서 신나, 라고 외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요.

  재미 이외에도 작가의 오랜 삶과 투병생활에서 오는 분위기도 맘에 들었습니다. 뭐, 책 전체에 흐르는 뭔가 묵직한 분위기가 작가의 철학에서 스미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예요. 작가의 역량을 따질 때, 장편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 전체에 있어 고른 글솜씨 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이상함과 긴장감을 400쪽 정도의 작품에 계속 투영시켰다는 것에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다만 제가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해불가'입니다. 머리가 달려서 그런가. 분명 긴장감 잔뜩 있게, 또 재미지게 책 마지막 장을 넘겼는데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지요. 조금은 난해한 면이 있었습니다. 희끄무리하게 느껴지는 게 있어서 가슴 한켠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휴, 한숨은 쉽니다만. 뭐, 뭔가를 못 느꼈다고 해서 제가 못난 건 아니니까 넘어가지만 아쉬운 마음은 많습니다.

  한가지 더, 책을 읽을수록 뭔가 구리구리한 느낌이 드는 문장이 가득. 젊은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으니 그들의 문장에 익숙해져 어른들의 글은 조금 소화하기 힘드네요. 게다가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과한 비유도 꽤 있었고 도대체 왜 말해주는 것인가 하는 에피소드도 몇 있었습니다. 작품이해가 덜 되어서일까요? 다행인 건 충분히 매력을 가진 책이라서 다시 읽을 의향이 있다는 겁니다.

  역시 문단의 어른이 쓴 책은 조금 다른 걸까요. 여타 베스트셀러 소설과는 읽는 맛에 조금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조금 어려웠어도 재미뿐 아니라 온전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었습니다.

  (2011년 12월 1일 ~ 12월 3일, 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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