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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꼭 읽기 바랍니다 - 우리 글 바로 쓰기 1 (이오덕)

by 양손잡이™ 2012. 2. 2.
우리 글 바로 쓰기 1 - 10점
이오덕 지음/한길사


012.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우리가 반세기도 더 지난 옛날부터 무심코 부르면서 자라난 이 노래부터 우리 말법으로 된 말이 아니다. "내가 살던 고향'이지 어째서 "나의 살던 고향"인가? 이 노래 말을 쓴 이원수 선생도 살아 계실 때 이 노랫말이 잘못되었지만 모두 부르는 노래를 고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일제시대에는 우리 말의 병폐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고 또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으니 예사로 넘겼지만, 지금은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훌륭한 문학의 업적을 남긴 분도 우리들에게 잘못된 말을 가르쳐 우리 말을 병들게 했을 경우 그 잘못을 드러내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을 하는 사람, 더구나 어린아이들에게 겨레의 말을 가르치는 아동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123쪽)



  정말 오랜만에 눈에 불을 켜고 본 책입니다. 많이 틀리는 말법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는데 그 두껍던 포스트잇 뭉텅이 하나를 다 쓰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리도 말을 잘못 쓴다는 것에 자책이 들고 이런 현실에 관심을 두고 고쳐나가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에 한숨이 납니다. 물론 저는 노력하지는 않고 관심만 조금 기울인, 보통 사람입니다.

  이 책은 정말 우연히 집어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고르다가 잠깐 편 것이지요.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이 책의 고침판(개정판)이 새로 나왔다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마구 웃었죠. 한글 연구가의 이름이 '오덕'이라니! 우히히히아하하하. 물론 지금 그렇게 웃는 분들을 보면 조금 씁쓸합니다.

  이번 글은 책에서 감명깊게 봤던 내용을 요약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아동문학가로 활동하시면서 우리 겨레의 말을 살리는 데 힘쓰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중국과 통하며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써왔고(주로 글 깨나 배운 사람들이나 그랬죠) 일제시대에는 일본어가, 그리고 독립 후부터 미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어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말글의 진짜 모습은 사라지고 차차 다른 말글에 물들어갔지요.

  글쟁이들의 '문자 쓰는' 버릇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따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민중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일 것을 열며하는 것이 글쟁이들에게 두루 퍼져 있는 버릇이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치지 않고는 우리 말글을 살릴 수 없다. (43쪽)


  한자어는 우리말에서 약 90% 정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한자어를 모두 없대고 모두 순 우리 말글로 바꾸는 건 아주 힘든 일일테고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문자 쓰는 버릇'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버릇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울수록 똑똑해져야 하는데 그 배움 자체가 조금은 그릇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을 책에서 몇 찾아 보았습니다.

· 한국여자 파죽의 4연승 (→거침없는) 『한겨레』, 1989. 1. 29
· 연습비행 중 새떼와 조우, 몇 마리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엔진에 화재가 발생, 추락했다. (→새떼를 만나 | →불이 나, 떨어졌다.) 『한국일보』, 1987. 9. 30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예시글도 옛 신문에서 쓰인 글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의 신문기사 제목과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괜히 어렵게 한자를 쓰는 걸까요? 바꿔 쓸 수 있는 우리 말이 있는데도 굳이? 익숙한 단어라도 한번쯤은 생각을 달리해 우리 말글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릴 때 신문 스포츠 꼭지에서 '패자'란 단어를 보고 어리둥절한 적도 있습니다. '진 사람'이란 뜻인지 '으뜸인 사람'이란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한자는 같은 발음인데도 다른 의미를 가진 게 많으니 이런 사용도 자제해야 하겠죠.

  한자어를 모두 순 우리 말글로 바꿔 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애쓸 수는 있습니다.

  이번엔 우리 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차례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사용했습니다. 뭐라고요? 늙은 사람이나 일본어를 써서 그렇지 우리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말하는 그 '늙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가르치고 그 아랫사람이 우리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한자어는 단순히 단어를 그리 쓴 것 뿐이지만 일본어는 우리 문법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책은 이 글에 쓰기 귀찮을만큼 많은 예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것들만 몇 가지 적어 볼까요.

· 세계 최대의 범종으로 만들어지는 이 종은…… (→만드는) KBS 방송, 1988. 8. 11
· 국가보안법의 출판규제 폐지돼야 (→폐지해야) 『중앙일보』, 1988. 7. 20
· 나의 첫 번째 존경하는 분 (→내가) 『길』, 제 11집
· 나에게 있어 낙선은 고배가 아니라 축배다. (→나의, 나에게) 『여성자신』, 1988. 7.
· 문화작업의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시작으로서, 시작이 되는, 〔을〕 시작하는) 『한겨레』, 1988. 7. 8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 속의, 감옥에서 〔얻은 생각〕), 어느 책 이름
· 어린이들을 보다 안전하고 포근하게 돌보고…… (→더, 더욱) 『해송 아기둥지』
· 문화제, 예술제 (→문화 잔치, 예술 잔치)


  예시글로만 보시면 잘 모르실 겁니다. 책을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잘못 받아들인 문법 중 하나가 '의'인데요, 이는 일본어 'の'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어에서는 이 'の'가 문법에서 꼭 필요한 존재랍니다만 우리 말글에서는 '의'를 없애고 말을 조금만 바꾸어도 충분히 뜻이 통하지요. 책은 '의'가 들어간 잘못된 문법을 무려 8개나 말하고 있습니다. (의, 와의, 에의, 로의, 에서의, 로서의, 로부터의) 글 가장 위에 있는 '나의 살던 고향은'도 마찬가지겠죠.

  현실적으로 한자어는 고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엉망진창 문법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글은 바르게 못 써도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영어는 글자 한자 잘못 쓰면 크게 수치스런 일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교육이고 정치고 문화고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종살이본성을 뿌리째 뽑아버리지 못한 때문이다. 걸핏하면 외국손님 보기에 부끄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도 우리가 마치 외국 사람들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는 종살이본성에서 나온 말이다. (199쪽)


  종살이본성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하지만 위의 말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맞춤법 틀린다고 누가 잡아가냐. 이런 사람들이 꼭 영어단어 잘못 쓰면 부끄러워하고 남이 그럴라치면 놀리고 그러죠. 세계화시대에 영어를 배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말글을 놓치면 절대 안 되겠죠. 마지막은 서양말입니다.

· 너 아까 우리한테 넘어졌었잖아. (→넘어졌잖아)
·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몰랐다)


  제가 보기엔 영어에서 때매김(시제)을 잘못 받아들였다고 봅니다. 영어에서 때매김은 현재, 과거, 미래와 진행, 완료, 완료진행이 뒤섞여 총 12개의 때매김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말글에서는 3개 뿐이지요. 이적(현재), 지난적(과거), 올적(미래). 더 낭감을 나타내는 때로서 '-고 있다' '-고 있었다'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었었다' 식의 지난적끝나때(과거완료시)라고 쓰는 말법은 없습니다. 과거완료를 쓰고 싶다면 '-했던 적이 있다' 같이 써야 하겠죠.

  과도한 수동태 문장도 잘못 받아들인 것 중 하나이고 무분별한 외국어도 문제입니다. 앞것은 충분히 고칠 수 있다지만 뒷것은 글쎄요, 이건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 컴퓨터, 마우스, 노트북, 왁스, 스프레이, 포스트잇, 배터리. 제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이리 많네요. 하지만 예전에 '네티즌'도 어떻게 바꾸나 했는데 '누리꾼'이라는 단어로 멋있게 바꿨잖아요? 서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죠.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보며 그리 열광하던 때가 별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석규의 쌍욕에 열광했나요? 신세경의 미모에 열광했나요? 밀본의 정체에 깜짝 놀랐나요? 단지 그뿐이었나요?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꾸기 무섭고 힘들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입니까? 남들도 다 '누군가 하겠지'라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는 누가 올바로 알려줄까요?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는 우리 말글 살리기, 이 책 읽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2012년 1월 29일 ~ 1월 31일,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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