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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슬슬 드러나는 실체 - 그것 중 (스티븐 킹)

by 양손잡이™ 2012. 1. 25.
그것 -중 - 10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009.

  설 쇠러 시골에 가느라 읽는 속도가 약간 뒤쳐지긴 했습니다만 읽긴 읽었습니다. 그것도 폭풍과 같은 속도로 말이지요. 시골에서 하도 잠이 안 와 불편한 자세로 이 책을 잠시 들여다 보았는데 이런. 이야기 위주의 소설책일 경우에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한 시간에 100페이지 정도밖에 못 읽는 편입니다. 게다가 집중력도 바닥이지요. 도무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진득하게 못 보는 편이라니까요. 이런 제가 밤 중에, 자는 가족들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휴대폰 불빛 가리느라 모로 누워 불편한 자세로 300쪽을 봤다 이겁니다. 직전에 본 위화의 <인생>도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가더니.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려.

  상권에서는 마이클의 전화를 받고 인물들이 모이는 장면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과거를 조금씩 떠올리지요. 저기 아래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이 충돌하기도 하고 그때의 아픔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중권에서는 드디어 이들이 만납니다. 왕따클럽 7명 모두가 모이지는 못해서, 또 이제 어른이 돼서 과연 그들이 예전과 같은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가운데 이야기는 계속 진행됩니다. 이 와중에 7명의 고리역할과 동시에 데리의 숨은 수호자와 기록자를 맡고 있는 마이클의 과거를 볼 수 있어서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이클이 어떻게 황무지로 왔는지, 또 어떻게 왕따클럽과 만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긴장감이 엄청난 책이었습니다. 그 어두운 불빛 아래 불편한 자세와 잘 보이지 않아 자꾸 어둡게 가라앉는 글씨를 견뎌내고서 계속 책을 봤다 이거 아닙니까. 주인공들은 아직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다 같이 공유했었을 기억이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기뿐이니까요, 자신에게 닥쳤던 위험한 상황은 자신만이 기억합니다. 아니, 자신이 너무 잊고 싶어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인데도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도 있지만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문구라든가 단어에서 궁금증을 부른 후 그게 등장하는 과거의 에피소드를 불러오는 식이지요. 시답잖은 것도 있고 중요한 것도 있고. 계속 이런 식의 진행인데도 희안하게 중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고 물리는 6명의 기억사슬 때문인가.

  다만 하나 걱정되는 건 진행상의 문제입니다. 아니, 스티븐 킹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는 조금 그렇다 이겁니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장편에서 6명의 인물이 만나는 건 3부입니다. 책으로는 중권의 1/3 정도 되는 부분이군요. 그런데 중권이 끝난 시점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고 떡밥은 계속 던지고, 이럽니다. '그것'의 정체가 까발려진 지금, 성장한 그들이 '그것'을 물리치는 게 이 이야기의 목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권을 읽으면 궁금증이 풀리겠지만요. 단순히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던 예전을 훌훌 털고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던 헨리 일당을 혼내주는 모습만 보면 '그것'은 괴물의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성장하기 위해 경험치를 줄 중간 보스의 자리에도 서 있는 듯하다는 건방진 생각도 해봅니다.

  하여간, 상권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다가온 중권이었습니다. 번역자의 센스는 여전히 뛰어나고(전 역서에서 순 우리말글을 배우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스티븐 킹의 문장 또한 신이 납니다. 다만 종종 등장하는 마이크는 누구이며(마이클의 오타인 것 같은데) 가끔 주어가 빠져 웃긴 문장도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에이, 뭐 이 정도야.

  (2012년 1월 20일 ~ 1월 23일,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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