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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1984』보다 쎈 디스토피아 소설 -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by 양손잡이™ 2012. 2. 13.
화씨 451 - 10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황금가지


020.

  레이 브래드버리의 장편소설 <화씨 451>을 읽었습니다.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땅을 치며 통곡할 만한 일입니다. 으허허. 괜히 추천도서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요.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성 연대기>로 처음 만났습니다. 이 책이 찍어 나올 때 샘터에서 서평 이벤트로 받았던 책인데 책이 지독하게도 늦게 오는 겁니다. 그래서 있던 정 없던 정 다 떨어져서 책장에 박아두고 있었죠. 거의 1년만에 펴봤는데 이런, 이렇게도 좋은 책을 그때야 접했다는 게 너무 후회되는 거 있죠. 성장소설인 <민들레 와인>도 바로 빌려봤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책을 폈습니다. 이 작가, 다임 소설을 그렇게 많이 썼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요. 숱한 작가들이 레이 브래드버리를 좋은 작가로 칭하지만 접할 기회가 없다면, 모르는 거지요. 국내에 나온 작품은 많지 않지만 꼭 찾아 보세요. <화성 연대기>를 강력추천합니다.

  책의 무대는 지식를 금지한 사회입니다. 소방수(Fireman)은 영어 철자 그대로 방화수가 되어버렸죠. 책은 읽는 게 아니라 태워야 하는, 사회악인 존재입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지 않고 태우기 시작했을까요.

  "상상을 해 봐. 자네가 영사기를 돌린다고 생각해 보게. 19세기 사람이 말과 개와 짐마차를 끌고 느릿느릿 꾸물거리던 광경을. 그 다음 20세기엔 화면이 좀더 빨리지지.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요약, 압축, 다이제스트판, 타블로이드판. 그리고 내용들도 죄다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갔지.
(중략)
『햄릿이란 제목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부인도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나중에는 '햄릿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해서 보면 기껏해야 한 페이지 정도 설명해 놓은 게 다가 되었지. 그러면서 광고엔 이렇게 나오고. 이제 당신은 모든 고전을 완전히 통달할 수 있습니다. 읽으십시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알겠나? 보육원을 나와서 대학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거네. 지난 5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의 지적인 문화 형태라는 건 그런 식이었네." (93, 94쪽)


  빠르게 빠르게, 중요한 정보를 취하고 곁가지는 치워버려, 정보사회에 발맞춰 효율이 중요하게, 빠르게 빠르게. 사실 문학작품 이야기의 뼈대만 말해 보면 한두 페이지에 끝나기 마련이거든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보면요, 줄거리는 한 줄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간통한 여인, 비소를 먹고 자살하다') 이 간단한 사건을 듣고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지요. 베스트셀러 중 고전문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명작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이 있는데 뒤에 광고문구가 터무니없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고 하지요. 아,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서 간단한 스토리 소개를 보고 '난 저 책을 읽었어. 난 문화인이고 똑똑해'라며 자위하란 말인갑쇼?

  그런데 말이죠,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차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정신 덕분이죠. 그래서 요약본을 싫어합니다. 특히 문학 요약본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꼴랑 글줄 몇 줄 읽었다고 허영을 부릴 사람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그 간단함에 취해 계속해서 쉬운 것을 찾는다는 것이겠지요. 그들이 커서 사회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어우, 머리가 아픕니다.

  "(선략) 요즘은 방화수들이 별로 필요치 않아요. 대중들 스스로가 책 읽는 것을 거의 포기했소. 당신 같은 방화수들이 때때로 서커스하듯이 건물들을 폭파시킬 때면 군중들이 마구 몰려와서 현란한 불꽃 구경이나 즐기지. 그러나 그건 사실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오.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조차 불필요할 지경이니까. (후략)" (143쪽)


  디스토피아 소설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지 오웰이 쓴 <1984>입니다. <1984>에서는 군중 지배와 맹목적인 복종을 위해 반사회적 지식을 무력으로 금지시킵니다. 그런데 <화씨 451>에서는 있죠, 정부가 앞장서서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바로 책을 읽던 대중이 처음 이 일을 했죠. 글 읽기는 귀찮고 오로지 재미만 찾으면서 책을 내팽개친 결과지요. 책은 의미가 없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책은 내 인생에 답을 주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글자만 보고 그 안에서 생산적인 사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책에는 벽에 달린 스크린이 나옵니다. 거기선 온갖 쇼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앉아만 있으면 하루 종일 편안히 앉아 시간을 떼울 수 있습니다. 단순한 방송이 아닙니다. 만약 토크쇼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부분의 음성을 지우고 시청자 이름을 넣어 방송이 아니라 실제로 스크린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닌데 그들을 친척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하늘을 날던 로켓이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 어릿광대들이 서로의 팔다리를 마구 잘라내는 장면, 경기장을 난폭하게 질주하며 서로 치고 받고 박살나는 제트카들의 난장판 장면, 이런 것들이 1, 2분 간격으로 송출됩니다. (154쪽) 그런데 이 스크린을 꺼버리자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끈 사람을 무섭게 쳐다보고 조바심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아무 피드백이 필요 없는, 단순한 영상만을 보며 깔깔대고 웃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세요?

  "사람들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아요."
  "무슨! 사람들이 왜 얘기를 안 해?"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박엔 안 해요. 그런 것들이 뭐든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 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 하고 또 해요. (후략)" (56, 57쪽)


  고대 그리스 대학을 그린 그림, 기억나시나요? 의자든 흙바닥이든 앉아 서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때는 시장바닥에서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하지요. 그래서 의도치 않아도 고대 철학이 완성된 것 가인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있죠, 죄다 시시껄렁한 말만 하고 시끄러운 농만 던집니다. 어젯밤에 그 드라마 봤느냐, 남자 주인공 너무 멋있더라, 내가 차를 샀는데 진짜 예쁘다, 아니 아니 아니되오, 나 만렙 찍었어, 내 여친 어떠냐 졸라 예쁘지 않냐, 등등. 게다가 요즘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런 의미 없는 대화마저 사라졌어요.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심지어 바로 옆에 앉은 친구에게 카톡으로 할 말을 적어 보내는 세대가 와버렸습니다.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고 다르게 생각하면 별종인 것 같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놈의 사고방식.

  "그 때엔 그들이 귀기울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못할 땐, 또 다시 기다릴 수밖에. 우리 아이들에게 입으로 책을 전해 기다리게 하고, 또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잃는 것도 많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듣게 만들 순 없소. 자신들이 필요할 때 와야 하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세상이 날아가 버렸는지 궁금해하면서. 결코 오래 걸리진 않소." (233쪽)


  인문학이 완전히 죽은 시대. 돈이 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 게임 좀 그만하고 책을 읽으라고, 철학을 공부하라고, 인문서적을 읽으라고, 음악을 들으라고, 다들 권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권유일 뿐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 거고, 저는 답답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을테니까요. 남들이 답을 내주길 원하지 않고 스스로 궁금해 답을 찾기를 바라면서, 이 책, 강력 추천합니다. 단순한 SF 소설이 아닙니다. 감상에 쓰잘데기없는 소리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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