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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종이 여자 - 기욤 뮈소

by 양손잡이™ 2012. 3. 21.
종이 여자 - 5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밝은세상


033.

  기욤 뮈소를 처음 만난 곳은 군대입니다. 군대. 예압 군대. 매번 군대를 말할 때마다 슬프긴 합니다만, 거기 들어가 있으면 매일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에 창의성이 사라집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면 사고도, 보는 책도 참 단순해집니다. 복잡한 책은 뒤로 하고 다소 단순하고 말초적인 감정을 다룬 책이 정말 재밌어지지요. 군인이 아니었다면 라이트노벨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연애소설도 그랬을 거고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거기서 포근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모든 이야기의 원천 사랑. 기욤 뮈소의 책은 거의- 아니 모두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판타지성이 짙은 내용이지요. 시간을 뛰어넘는다거나 공간을 제멋대로 휘저어버리거나. 갑부아들과 결혼하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 하지만 사람은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않기에 기욤 뮈소가 그리도 인기가 많나 봅니다. 물론 소재뿐 아니라 서사나 장면 전환, 이야기 구성도 인기에 한몫 했지요.

  기욤 뮈소의 책은 전까지 4권 봤습니다. 이번이 5번째 보는 책이네요. 하지만 보고 싶어서 본 책은 아닙니다. 만약 연수원에 쳐박혀 있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책이지요. 아쉽게도 전 기욤 뮈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번 사랑 사랑 사랑타령이고 전개나 구성이 거의 뻔하거든요. 상상력이나 흐름은 흥미롭고 재밌으나 뭔가 전체적인 스타일이 비슷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지루해진달까요?

  하여튼, 이 <종이여자>는 기대이하였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사랑을 잃고 폐인이 돼가는 톰이 그려지는데 어우, 지루해서 정말 몇번이고 책을 덮고 싶었다니까요.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는 게 전보다 확 줄어든 모습입니다. 그나마 책에서 나온 여자, 빌리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그나마 자리를 잡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약빨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더, 더 강한 흥분제가 필요해! 그래서 작가는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미 내 역치는 커지고 커져 산을 넘고 노스페이스를 입어버렸는 걸 어떡해. 파워보온모드.

  톰의 정신상태를 고치겠다는 빌리와의, 좌충우돌 여행기도 목적이 불분명해 영 재밌지 않았어요. 그나마 중간에 가장 큰 갈등요소인 빌리의 어이쿠 아파야 사건이 진행을 좀 재밌게 하려나 싶으면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잔뜩 끌어들여 다시 시궁창 속으로 빠뜨립니다. 이 책을 펼치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친구가 있었지만 이건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야. 그래도 "끝까지 읽으면 뭔가 나올 거야"라는 친구의 말에 끝까지 읽긴 했습니다만, 150쪽이 남았는데 이야기 진행이 이 정도라면 분명 엔딩은 이렇게 저렇게 되겠지 했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고 작가와 친구에게 실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봐,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작가가 가지고 있던 강점이던 이야기의 힘이 확 줄었고, 긴장감을 주려고 여러 에피소드를 여기저기 배치했지만 뭐 어쩌라고 식이 돼버렸고, 그렇다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닌, 여튼 그저그런 대중소설의 틀에도 못 끼는 책이 됐습니다. 초두효과 때문에 뒤에서도 영 재미를 못 느낀 건가. 물론 나보고 이런 책을 쓰라면 못 쓰겠지만, 흠흠, 그렇다 이겁니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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