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 - 펠릭스 J. 팔마 지음, 변선희 옮김/살림 |
028.
에에, 참 무거운 책이었습니다. 500쪽이 넘는데다가 양장본이다보니 묵직하더군요. 밖에 돌아다닐 때도 짬짬이 읽으려고 들고 다녔는데 너무 무겁더라고요. 그래도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재밌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에에, 참 무거운 책이었습니다. 500쪽이 넘는데다가 양장본이다보니 묵직하더군요. 밖에 돌아다닐 때도 짬짬이 읽으려고 들고 다녔는데 너무 무겁더라고요. 그래도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재밌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H. G. 웰즈의 <타임머신>을 기초로 두고 쓴 책이고요, 단순히 소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무려 웰즈가 등장인물로 등장합니다. 이른바 메타소설이라는 놈인데 약간은 패러디적 측면을 띄고 있습니다. 웰즈에게 바치는 헌정사? 이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웰즈 킹왕짱 이런 건 아니더라고요. 소설 마지막에 재밌는 상상(물론 초중교 시절 다 해봄직한 놈이지만)을 던져주기도 하고요.
책 배경은 19세기 말 영국입니다.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때문에 어두운 사창가 거리는 떠들썩하고 웰즈의 <타임머신> 출간과 함께 시간여행에 대한 관심도 높아갑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두고 있지만 본격 SF는 아닙니다. 시간여행을 기초로 하고 사랑과 미스터리를 짬뽕한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의 힘이 상당한 놈이었습니다.
이야기는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옴니버스 양식을 취합니다. 각각의 부에 잠깐 언급이 되었던 짤막한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과거에서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식이지요. 예를 들면, 1부에서 앤드류의 사촌, 찰스가 잠깐 '기차타고 룰루랄라 미래여행'을 말합니다. 2부에서는 그가 겪었던 미래여행을 시작으로 다른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중간중간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 과연 이 일은 누가 시켰는가 등의 문제가 다음 부에서 밝혀지게 됩니다. 이래서 가끔가다가 아하 하며 슬며시 웃는 일도 있었답니다.
처음 책을 펴면 조금 지루하기도 합니다. 1부 처음에는 앤드류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방황하는 장면이 계속 되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귀족과 창녀의 사랑이 드물게 사용된 소재도 아니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별로 절절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렇게 70쪽을 힘겹게 보다가, 찰스가 앤드류의 자살을 막는 장면부터 흐름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합니다. 기대하던 '시간여행'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여기부터는 독서 흐름이 전혀 끊기지도 않고 계속,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실 문장 번역 문제가 조금은 있습니다. 「향기로운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의 무리 사이를 걸어가는 오랑캐꽃을 파는 소녀들과 마주칠 때 나는 달콤한 공기만이 그를 나른함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었다」(88쪽)이란 구절을 잠깐 봐 보면, 무리 사이를 걸어가는 게 오랑캐꽃인지, 꽃을 파는 소녀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랑캐꽃이 모다피나 뚜벅초가 아니니 걸어다니지 않겠지만, 뭐 그렇다 이겁니다. 다행히도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문장에 대한 불편함은 싹 사라지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꽤나 있긴 하지만 이야기 흐름이 워낙 좋아서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
평행우주를 이용해 시간여행과 그 역설을 설명하는데요, 다른 소설에서도 꽤나 쓰인 클리셰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모던한 소재는 아니지만 아무리 같은 소재를 쓴다고 해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흥미도가 달라지는데 <시간의 지도>는 정말 잘 쓰인 소설입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캐릭터에 상당한 강점을 가집니다. 앤드류와 톰, 그리고 웰즈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특히 톰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무 것도 아닌데 이루어지지도 않을 사랑을 꿈꾸는 아름다운 모습이란! 사기꾼에 찌질이긴 하지만.
그 말을 하고 길리엄은 작가를 1896년 11월 21일에 내버려둔 채 미래의 문을 닫고 사라졌다. 갑자기 웰스는 자신이 머레이 시간여행사의 비참한 뒷골목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 몇 마리가 쓰레기가 가득한 곳을 오가고 있었다. 2000년으로 떠난 여행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반사적인 충동으로 손을 재킷 주머니에 집어넣었으나 비어 있었다. 아무도 그곳에 꽃을 숨겨두지 않았다. (464쪽)
소설 <타임머신>에 대한 헌정소설이기도 해서 원작의 향기가 남아 있습니다. 중간중간 엘로이와 몰록, 동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타임머신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기계도 그대로 묘사합니다. 특히 464쪽의 구절이 정말 기억에 남네요. 위나가 주머니에 넣어준 꽃. 언덕 위에 남은 의자에서 오래된 타임머신을 떠올린 건 우연은 아닐 겁니다.
하여간, 재밌는 책입니다. 손에 꼽을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요. 마치 변사처럼 서술하는 것도 요즘 소설과 달라 눈에 걸리긴 하지만 몰입도에 큰 영향은 없었던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소개하고 끝내렵니다. 혹시 당신은 과거를 후회하느라, 미래를 좇느라 현재를 내팽개치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녀에게 손금은 보지 않았는데, 항상 같은 변명을 댔다.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알게 되면 호기심이 사라질 텐데, 그것이 자기가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이다.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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