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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 -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by 양손잡이™ 2013. 4. 27.
완벽한 날들 - 7점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마음산책



039.


  우리에게 완벽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무 걱정 없이 평온한 상태이다. 작년 여름, 계곡으로 피서를 가서 극강의 평온을 누리고 왔다. 도시는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해맬 때, 휴대전화 전파도 잡히지 않는 산골짜기는 시원한 바람이 조용히 흘렀다.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해지는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마당 한가운데 큰 나무 아래 그늘진 평상에 누워 있으면 그때만큼은 나는 여름에 존재하지 않았다. 동생들은 계곡에 내려가 물장구를 칠 때 나는 평상에 드러누워 초록 햇빛을 받으며 글을 읽어나갔다. 낮이 시원한만큼 밤은 추울 만한데, 그렇지 않았다. 다만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날벌레만 조심하면 됐다. 모기장 안에서, 이젠 전화기보다는 랜턴으로 쓰이는 휴대전화로 불빛을 비춰가며 한 글자 한 글자씩 더듬었다. 수많은 나뭇잎 사이로 비춰오는 햇빛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육각으로 변하는 마법을 부렸다. 오직 '밝다'라고 인식하는 빛은 자연과 인공의 필터를 통해, 내 능력으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스펙트럼을 뿜어댔다. 늘어지게 자고, 늘어지게 책 보고, 다시 늘어지게 자고. 3일의 여유 동안 7권의 책이 쌓였다. 26년 중 가장 완벽한 날들이었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철학자와 늑대>가 떠오른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직선에 사는 존재이다. 반면 늑대를 비롯한 동물에게 시간은 순간의 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시간의 끝에 죽음이라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것이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인생의 끝의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끝없이 목표를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면 다른 목표를 만든다. 죽을 때까지 목표만을 가지고 사는 우리기에, 사실 진정한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죽기 전에 목표를 이뤘다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죽기 전의 사람은 가장 약하다던데, 바라던 목표가 지금 이루어졌다는 말은 그 목표가 평생 걱정했던 것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목표 달성이 인생의 평생 과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걸 이루고보니 인생이 비참해지더라!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반대로 가정해보면 이 아이러니가 조금은 풀릴지도 모르겠다. 가장 원대한 목표였던 '목표 달성'이 사실 가장 최악의 상태라면, 바닥에 내팽겨쳐지고 짓뭉개지고 패배감을 잔뜩 느끼는 때가 사실 가장 최상의 상태, 즉 완벽한 때는 아닐까? 자신이 아직도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항상 성공해야만 하고 행복해야만 한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행복에 겨워 함박웃음을 지을 때가 아닌 행복도 불행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둥둥 떠다니는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낄 땐 사실 불안할지도 모른다. 느껴지는 온갖 감정이 합쳐져 결국 무채색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밝은 빛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성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한다. 허나 이미 언급했듯이 직선을 사는 인간에게 행복은 허상의 개념이다. (개념 자체가 이미 허상이긴 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에서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은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차이마저 없앤다. 그로 인해 자신이 전체에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고, 오히려 전체에 속박된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기쁘게 느껴진다. 한낮의 여름, 그늘 아래에서 사람과 바람과 활자는 하나가 된다. 자연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에 비해 아직 덜 성장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며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을 때 우리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최악의 상태에 맞닥뜨리고, 이는 곧 우리가 완벽한 상태로 한발 나아감을 체험하는 때이다.


  내가 내뱉는 숨은 대기의 일부분이 되고, 대기는 온갖 생명을 잉태시키며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을 비운다. 비록 인간이 자연에 종속된 존재라 할지라도 자연을 느끼며 완벽에 가까워지는 순간만큼은 인간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다른 존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그릇마저 비울 때, 우리는 진정 경이로운 존재가 된다.



* 책의 글 중 감명 깊게 읽은 '흐름'과 '완벽한 나날'을 떠올리며 짧게 써보았다. 감상이라기보다는 일기가 되었지만, 어쨌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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