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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소년이 온다 - 한강

by 양손잡이™ 2014. 7. 11.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창비



062.


  어떤 소재는 소설로서 다루기 매우 민감할 때가 있다. 찬반양론이 팽배할 때는 더욱 그런데, 내가 보기에 팽팽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우리 근현대사는 항상 그 대립이 극렬하다. 일본에서의 독립, 북한과의 전쟁, 힘든 시기를 딛고 고도성장한 현대사…. 자랑스럽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봐도 너무나 아쉽고 슬픈 장면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과는 다르게, ‘우리’가 말하는 근래의 잃어버릴(동시에 잃어버리는 중인) 10년 동안 어처구니없는 의견이 크게 득세하고 있다. 여러 방면의 보수화(사실 보수화도 아니다. 진정 보수라면 나라를 위해야 하는데 지금 ‘그들’이 위하는 게 나라인지 기득권인지 알 수 없다)는 사건의 본질을 흐뜨리고 집단 사이의 대립만을 가중시켰다. ‘저쪽’ 사람들이 가장 비꼬는 건 역시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이다. 당시 참혹했던 장면을 보면서 그들은 입에도 담지 못할, 아니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이 어처구니없은 말을 내뱉는다.


  그런 와중에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이하 ‘소년’)가 출간되었다. 정유정의 <28>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자그마한 모티브를 따왔다면, <소년>은 소설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이다. 이야기는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줄기로 벌어진다. 군인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돕는 동호부터 함께 일하는 선주, 은숙, 진수, 난리통에 사라진 동호의 친구 정대, 동호 가족의 입을 빌어 80년대 전후를 재구성한다. 일찍이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에서 선보여 다소 익숙한 2인칭 서술의 1장부터 시작하여 각 장마다 인물과 시간적 배경, 서술을 달리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책을 펴는 순간, 동호가 상무관에서 일을 돕는 1장부터 푹 빠지고 말았다. 2인칭 서술의 특별함 때문은 아니다. 다른 다섯 장에 비해 압도적으로 침착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종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호는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에게 죽은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고,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시선은 당시의 모습을 열정적이게도, 비관적이게도 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타자화하여 목도시킴으로써 비극의 현장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소년>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특히 인상깊은 이는 3장 ‘일곱 개의 뺨’에 나오는 은숙이다. 과거 광주에서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일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 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한 책을 번역출판하기 전, 검열과에서는 번역자가 수배자라는 이유로 은숙을 몰아새우고 일곱 대의 뺨을 때린다. 은숙은 이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뺨을 한 대씩 잊어가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뺨은, 입을 아주 살짝만 달싹거리며 무언에 가까운 저항연극을 보면서 오히려 가슴에 더욱 깊이 새긴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압제에 항거하는 은숙의 눈물이 빛난다.


  은숙과 반대로 선주는 과거에서 멀어지려 한다. 광주에서의 빨간 기억, 수많은 고문, 그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 선주는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 한강이 말하는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하다.(고문 경험자가 남긴 인터뷰에서).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고통의 기억은 몸속에 머무르고 생명을 공격한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을 전면에 내새운 한강은 그들을 모두 보듬는다. 2장 <검은 숨>은 이야기 전개상 다소 불필요해 보이지만 결국 한강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2장은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혼이 고기덩어리와 마찬가지인 썩은 시체에 간신히 연결돼 이 세상에 머물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시체가 썩어가고 비가 내리고, 온통 단편적 이미지로만 이루어져 뒤죽박죽인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혼(魂)들은 서로를 가까이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위로한다. 서로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생각을 주고받을 방법도 몰랐지만, 그들은 마지막 재가 되기 전까지 기척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위안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진실한 공감만이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강은 말한다.


  인구 사십만의 광주에,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팔십만발의 탄환. 먹으로 너덜너덜해지고 종이가 퉁퉁 불 때까지 단어들이 지워진 책. 퍼즐 맞추기를 하듯 신문에 실린 사진. 검열되어 텅 빈 공란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한강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기록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곱 개의 뺨의 고통처럼 쉽사리 잊힌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그들은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된다. 우리는 고귀하다. 그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인상깊은 구절.


  어떤 기억을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진행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하는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될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를 죽이러 온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광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 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게 깨끗이 나를 도와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은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즐 수 있습니까?


_<소년이 온다>, 한강, 134, 135쪽,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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