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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포레, 2014)

by 양손잡이™ 2014. 12. 14.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100. 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포레, 2014)


1. 햇볓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 가운데. 당신은 볼 거리도, 읽을 거리도, 즐길 거리도 하나 없이 완벽히 고립됐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고, 산책을 나가봤자 철조망에 둘러쌓인 경계선만 보일 뿐이다. 이곳에서 온전히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과연 내가 아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의 괴리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나에 대해 파고들면 느낄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앞에만 보이는 감정- 엄청난 기쁨? 슬픔? 아니면 행복?


2. 조앤은 행복을 운운하는 로드니에게, 행복보다 중요한 다른 것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의무감이라고, 조앤은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조앤은 일전에 로드니의 귀농계획을 반대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충분한 돈이 벌리지 않으리란 이유에서였다. 부모로서, 또 남편으로서의 의무감. 아이들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어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결국 로드니는 조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충분히 유능하지만 점점 지쳐가는 로드니의 모습은, 그가 진정 원하는 직업이 변호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조앤이 말한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다. 조앤은 그 의무감에 자신을 모두 던진 것을 당연하고, 남편까지 함께 하기를 종용했다. 그 ‘의무감’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토니는 분명 농장을 좋아했을 것이다.


3. 부모의 희생, 참 씁쓸한 말이지만 어느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부모의 뜻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농사를 짓겠다는 토니에게, 로드니 아래로 들어와 변호사 일을 이으라고 말하는 조앤. 항상 부모에게 쌀쌀맞게 구는 에이버릴과 버릇없이 자란 바버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부모의 생각대로 자라주길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일까, 아니면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얻고자임일까. 로드니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조앤은... 부모와 자식간의 도리가 아닌, 그저 가치의 등가교환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4. 조앤은 며칠 간 깨달은 것들 -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너무 강조했다는 것을 로드니에게 고백하고, 그와 함께 새 삶을 살기 원한다. 로드니가 자신을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이전보다 더 솔직하고, 타인의 말을 더 귀담아들으며 살리라고 다짐한다. 다소 과장하자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다. 하지만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는 집에 도착한 후 잠깐의 고민 끝에 금세 사라지고 만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사람은 그 열기 때문에 쉽게 불타오른다. 조앤은 불같이 인간적 영감을 얻었지만... 이 순간적인 열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냉각되어버린다. 결국 용서를 빌리라는 조앤의 결심은 다시 마음 깊숙히로.


5. 기차 안에서 사샤는, 로드니가 자신을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거라는 조앤의 말에 그건 성인(聖人)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침울하게 말한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조앤의 마음 속엔, 자신이 앞서서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으로 로드니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었지만 사샤의 말처럼 그건 성인들이나 가능한 일이고, 로드니는 성인이 아닌 그냥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결국 조앤의 행동과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로드니가 아닌 그녀 자신밖에 없다. 아니,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이가 아무리 성인이라 할지라도 구도자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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