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지호 |
101. 서재 결혼 시키기 - 앤 패디먼
1. 이번달 초, 나에게 너무 벅찬 책을 읽고는 책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졌더랬다. 읽을 수 있는 책은 쌓였는데(무려 450권!) 어떤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미만으로 보는 가벼운 소설도 그랬다. 2, 3개월에 한번 오는 독서 불감증(?)이 온 것이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글자 읽기조차도 귀찮았다. 완결 기념으로 나루토를 봤는데, 대사는 하나도 안 읽고 그냥 그림만 보면서 휙휙 넘겼다.
2. 이럴 때 읽는 게 바로 책에 대한 에세이다. 책에 대한 책인 메타북은 여러 작품을 소개받으면서 다른 책에 대한 지평을 열어준다면, 책과 독서에 대한 에세이는 책읽기에 지친 자에게 의욕을 불어둔다는 점에서 두 종류의 책은 미묘하게 다르다. 나는 글에 대해 모두 지쳤으므로 이런 에세이가 딱이었다.
3.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에세이도 자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의 감상이 항상 사변적으로 흐르듯이, 저자의 일상생활을 말하는 에세이는 자연스레 독자의 주변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꼭 자신의 이야기가 지면에 펼쳐지는 것 같지 않은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에세이가 있는 반면, 공감을 이끌어내는 에세이도 충분히 많다.
4. 그런 면에서 <서재 결혼 시키기>는 매우 성공적이다. 표제작 격인 '책의 결혼'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백프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만약 책을 좋아하는 배우자를 만난다면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다. 가뜩이나 책이 많은데 같은 책이 두 권 있다면 어떤 책을 보관하고 어떤 책을 처분할 것인가. 책 정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행복한 고민이겠지만 글쎄, 미래에는 깨나 골머리 썩힐 일이다. (덧붙여, '책을 좋아하는 배우자'를 맡기는 커녕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나 하는 걱정이 든다)
5. 책벌레들의 희한한 습관도 몇 소개한다. 이건 저자와 가족들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교정과 퇴고를 하는 무서운 습관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독자 자신이 교열 강박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이런 버릇은 재채기처럼 피할 수 없는 반사작용이나 마찬가지다.(118쪽 인용) 깊은 공감을 부르는 구절이었는데, TV 자막에 보이는 수많은 맞춤법 오류를 보자니 복장이 터질 판이다. 심화과정으로, 신문 기사, 심지어 소설에서까지 '이 구절은 어떻게 고쳐쓰면 중의적 표현을 피해 본뜻을 오해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나도 참 머리에 바람만 든 놈이다.
6. 글자에 중독된 이들은 책이 없다면 무엇인든 읽을 준비도 되어 있다. 주변에 인쇄된 모든 것을 탐욕에 눈이 멀어(!) 탐독한다. 광고전단은 물론이거니와 궁지에 몰리면 어떤 안내문이라도 읽을 것이다.(157쪽 인용) 어떤 제품을 사면 남자들은 보통 매뉴얼을 안 읽는단다. 하지만 나는 그걸... 끝까지 읽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개봉하세요부터 어떻게 보관하세요까지. 심지어 쓸데없는 스펙까지 읽는다. 물론 매뉴얼을 안 읽어도 제품을 사용하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다. 왜 읽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이렇게밖에 대답을 못하겠지. 그곳에 글자가 있었습니다. 쿠웅.
7. 모든 습관이 공감을 부르지는 않는다. 책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는 항상 논란이 되곤 한다. 저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 '책에 허용된 일은 단 한가지 그것을 읽는 것뿐이라고 믿는 궁정식 연인들이 어떤 손해를 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기우뚱한 물건을 받칠 때, 문의 바람에 닫히지 않게 괼 때, 풀이 잘 붙도록 눌러 붙을 때, 울퉁불퉁한 양탄자를 펼 때, 그들은 달리 무엇을 사용할까'(68쪽 인용) 페이퍼백이 성행하지 못하고 장서용 양장본이 대우받는 우리나라에선 책이 너무 귀부인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는 책 한귀퉁이를 접거나 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하기를 꺼리는 습관과 일맥상통한다. 나도 책을 험하게 다뤄 귀퉁이는 물론이거니와 한쪽 전체를 접기는 하지만 아직 줄을 긋고 글씨를 쓰는 건 차마 못하겠다.
8. 버지니아 울프는 평범한 독자는 비평가나 학자와 다르다고 말한다. 평범한 이들은 지식과 재능이 많지 않지만 지식을 나누어 주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정정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기 때문이다. (14쪽 인용)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도 필요하지만, 자신만을 위하고 즐거움을 지향하는 독서도 필요하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뭔가 나 자신이 현학적이고 심각하게 변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가끔 고개를 쳐든다. 어려운 인문학 서적을 읽고 관련 지식을 나열해가며 지식을 논파하며, 고전 소설을 탐독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 둥, 유식하고 유능해져야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감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시간이 남는 여유로운 이들이나 읽는 취미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9. 그렇다고 자기계발로서의 독서를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다. 분명 독서의 큰 효과이기 때문이다. (장르에 따라 길과 목적이 조금 다를 뿐이다) 하지만 책읽기에 너무 큰 효과를 부여하려고만 한다. 1년에 몇 권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느니 식의 짱깨식(오해없으시기 바란다) 독서법은 적어도 나에게는, 글에 대한 즐거움은 모두 배제하고 책을 그저 성공으로 가는 수단으로 취급하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때론 무의미하게, 그저 즐기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이 부족하고, 지식도 적지만 그 시간만큼은 손에 든 책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다. 그게 어떤 의미의 독서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10. 아, 하나 빼먹은 이야기. 책에 대한 에세이는 작년에 읽은 나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과 윌 슈발브의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을 마지막으로 읽지 않았다. 원래 책과 독서에 대한 에세이를 엄청 좋아했으나 앞서 말한 두 권의 책이 너무나도 우울했기에... 이런 에세이를, 가끔 환기를 위해 읽던 나로선 슬픈 기운 가득한 책을 읽어 나까지 다운될 필요가 없기에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서재 결혼 시키기>를 만난 것은 천운과도 같았다. (한 달만에 간 일산 본가에서, 심심해서 알라딘 중고서점 일산점 검색을 해봤는데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을 만났다. 이런 인연이 있나!) 이 책을 읽은 덕에 몇년 동안 벼르던 '죄와 벌' 상권을 사흘만에 뗐다! 야호. 가끔 책이 지겨워질 때 펼 만한 책이 하나 더 늘었다. 다른 추천서는 김열규의 <독서>, 김무곤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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