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요가를 배우고 있다. 크로스핏을 하다가 어깨를 다친 후 운동을 그만뒀는데, 결혼 전부터 요가를 해온 와이프를 따라 집에서 간간히 자세를 연습했다. 올해 초부터 주에 두세 번 간단한 요가 시퀀스와 스트레칭을 했다. 가까운 거리에 와이프가 아는 선생님이 계신 요가원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운동하러 간 게 두 달째다.
집에서 요가 동작을 취할 때는 좋았다. 어차피 혼자고, 와이프는 옆에서 항상 독려의 말을 해줬다. 굳은 다짐으로 요가원 등록을 마쳤는데 들어서니 막막하다. 여성의 비율이 높아서 이것 자체로 기가 죽는다. 덩치가 작거나 몸이라도 좋으면 위안이 되겠건만, 뼈가 굵고 요새 살이 오를대로 올라 통통한 내가 거울에 비치면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크로스핏과 런닝용 운동복은 상하의 모두 짧은 편이다. 하의는 OK, 상의는 진짜… 말을 말아야지. 팔이라도 머리 위로 들라치면 짧은 상의는 내 배 중간까지 올라오고, 살이 붙은 배를 거울로 보면 민망함을 감출 수 없다. 같이 수강하는 원생이 많을수록 부끄러움은 배, 아니 제곱, 세제곱이 된다.
“어떤 수업이든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괜찮아요. 못 하면 어때? 재미있을 거예요.” _25쪽
그래, 비록 몸은 남루해도 엄청난 근력과 유연함으로 요가 동작(아사나)이라도 잘 하면 모르련만 따라하기도 벅차다. 힘을 쓰는 동작은 어떻게든 흉내는 내겠는데, 어깨와 골반이 뻣뻣해 비틀기나 구부리는 동작에는 영 쥐약이다. 아니, 쥐약 수준이 아니다. 엄두를 못내는 수준이다. 오늘은 하타 수업을 들었는데, 할 수 있는 동작이 절반이 안됐다. 책 <단정한 실패>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던 건, 저자도 나와 비슷한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워커홀릭 매거진 편집자로 일하면서 굳은 몸과 관절. 도톰히 살집이 있는 몸. 다운독(견상자세 또는 아도무카스바아사나)이 요가 동작들 사이 사이 휴식을 주는 자세라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저자가 요가를 접한 초기에 토로했던 어려움을 나도 하나씩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요가라면 인도의 기인이 요상한 자세로 묘기를 부린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요가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사나가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요가에서는 완벽한 아사나보다 중요한 것은 아사나를 행하기까지의 중간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못하면 어떠리, 할 수 있는 데까지 힘껏 동작을 수행하면 된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의 현존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 이게 요가일까.
내 수련은 나만 안다. 나한테만 쌓인다. 내가 하는 요가는 나만의 것이다. 누구와 함께 하기 전에 온전한 개인이 되는 일.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한다는 정갈한 다짐. 그게 먼저였다. 사랑이 그런 것 처럼. 인생이 결국 그런 것처럼. _84쪽
동작이 잘 안되도 좋다. 옆 사람은 동작을 잘 하네, 자세가 예쁘네 할 것도 없다. 거울에 비치는 내 뱃살과 덩치도 다 버린다. 나는 내 요가를 한다. 요가에는 남이 없다. 수련할 때는 나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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