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에 읽고 썼습니다.
적은 분량이라도 꾸준히 쓰던 독후감에 흥미를 잃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그저 내 글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독후감 쓰기 시작한 지 8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면 지칠 만하다. 물론, 해볼 수 있는만큼 노오력하고 한숨 쉬는 게 아니라, 그저 결과가 영 안좋으니 징징거리는 것뿐이지만.
글쓰기가 무섭고 힘들어질 때면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는다. 글쓰기를 정신수양의 한 방법으로 말하는 점은 아쉽지만 어떤 태도로 글쓰기를 받아들이고 행할지 말해준다. 이 책을 읽고나면 잘 못 써도 우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번에는 두 권의 글쓰기 책을 읽었다. 한권은 강원국 작가의 <강원국의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다. 두 권은 방향이 정반대다. 전자가 작법을 모아놓았다면, 후자는 쓰기에 관한 에세이에 가깝다. 강원국 저자의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꽤나 실망했다. 제목처럼, 저자가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두 대통령 - 김대중, 노무현 - 이 이야기의 주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아니라 두 대통령이 전면에 드러난 것은 책의 저술 방향과는 일치하겠지만, (감히 말해보지만) 내게는 두 분의 추억팔이로 보였다.
그래서 이번 신작 <강원국의 글쓰기>를 더욱 기대했다. 제목부터 대통령이 아닌 작가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가. 온전히 강원국의 이야기가 다뤄지리라 생각하니 더욱 읽고 싶었다.
저자는 작법에 관한 모든 내용을 이 책 안에 넣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작법서를 읽었고 자신의 노하우를 섞어 책 안에 녹였다. 저자의 의도가 명확한만큼 방향성과 내용이 모두 일관적이다. 온갖 작법을 꾹꾹 눌러담았는데
결론은 노-잼. 이 책은 실용서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글을 워낙 잘 쓰니 예문은 태클 걸 게 없는데, 에피소드들이 왠지 모르게 아재의 향이 솔솔 풍긴다. 저자가 대통령과 기업 회장 아래에서 일해서 그런지 글도 관공서처럼 딱딱하고 어딘가 규정된느낌이다. 사실 이 책은 절만밖에 못 읽은데다가 내 작법, 독법 실력이 미천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작법서로는 안정효 작가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가 더 재밌다. 단, 두 책은 실용 쓰기와 문학 쓰기라는 점에서 결이 약간 다르다. 반면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은 별 기대없이 폈다가 훅 빠져들었다. 작가를 널리 알린 전작 <글쓰기의 최전선>과 약간 비슷한 책이다. 글쓰기이 방법이 아닌 태도를 강조한다. 전작의 부제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하라'라든가, 이번 책의 부제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처럼 이 책을 읽고나면 무엇이든 쓰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런 면에서 앞에서 말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와 비슷하다.
저자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각 장마다 소개하는 여러 작가의 '쓰기에 대한 문장'만 읽는 것도 재밌다.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와 비슷한 구성인데, 문장에 이어 이에 관련한 2-4쪽의 짤막한 글이 이어진다. 책 제목이 쓰기의 말들인 것도 이 문장들이 있어서이다. 몇 개만 꼽아보면,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_테드 쿠저
(아 이 얼마나 마음을 파고드는 말이란 말인가. 엉망이라도 써보자!)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_황현산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_이오덕
(뼈때리지 마세요)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_고레에다 히로카즈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관심과 냉소는 지성의 표시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한 징후이다. _한나 아렌트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_수전 손택
(언젠가는 한나 아랜트와 수전 손택 책을 깊고 자세히 읽어야겠다. 그들의 생각은 정말 매혹적이다)
어째 별로였던 책 이야기가 더 길어졌는데... 기대한만큼 실망도 커서일까. 사실 좋은 이유보다 안 좋은 이유를 찾기가 더 쉬운 법이다. 은유 작가의 책을 읽고서는 글이 쓰고 싶어져 카페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고, 절반 가량 성찰과 생각없는 인용만 하고 무게만 잡았으니, 오호 통재라. 책읽기와 글쓰기가 잘 안풀릴 때마다 이것들에 대한 책을 읽는 나는, 행동하지 않고 남이 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건 아닐까? 이를 통해서 나도 노오력하는 중이라고 착각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힘도 아웃소싱해버리는 이 패기란.
마르크스는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를 읽으면 스스로의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_우치다 타츠루
책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직접 나서야 한다. 하지만 깨닫는다고 되는 건 없지.
'독서 이야기 > 독서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2018) (0) | 2022.10.10 |
---|---|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유유, 2018) (1) | 2022.10.07 |
단정한 실패 - 정우성 (민음사, 2021) (1) | 2022.10.05 |
공부의 위로 - 곽아람 (민음사, 2022) (1) | 2022.10.04 |
새의 선물 - 은희경 (문학동네, 1995) (0) | 2018.06.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