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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단어와 문장20

[문장배달]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아마도 같은 해 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걸어 소설가 김소진 선배가 암으로 죽었으니 문상가자고 말했다. '절대로 가면 안돼!'라는 문장이 온몸으로 육박해왔다. 왜 가면 안되는데?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그 느낌에 반항하듯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 책 날개에 실린 사진을 확대해놓은 영정에 두 번 절한 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간 앓았다. 소설이 뭔데? 청춘이 도대체 뭔데? 다 귀찮아졌다. 지긋지긋했다. 남은 평생 소설 따위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은 뒤, 문방구에서 이력서 용지를 사와서 여기저기 취직원서를 냈다. 그리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일산에서 장충동까지 매일 왕복 세 시간의, 여행에 가까운 출퇴근을 했다. 버스에 서서 창 밖을.. 2011. 12. 4.
[문장배달]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그러나 K는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강아지가 적의를 보이며 K를 낯선 침입자 취급을 한 것처럼 낯익은 아내와 낯익은 딸, 낯익은 휴일 아침의 모든 풍경이 한 순간 갑자기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역모를 꾸미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와 태평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일치단결해 K를 속이고 K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자명종은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자명종이 아니다. 아내 역시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아내가 아니다. 딸아이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딸아이가 아니다. 강아지도 낯이 익지만 어제까지의 강아지가 아니다. 스킨도, 휴대폰도 어디론가 발이 달린 것처럼 제 스스로 사라져버렸다. 이 돌연변이의 기이한 현상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인된 것일까. ― 최인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눈을 .. 2011. 12. 3.
[단어사전] 감연하다 그렇게 토해내면서 오랜만에 어떤 충족감에 감싸인 간타는 갑자기 무작정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중간했던 「피고름 치달리다」의 이야기를 감연히 이어가고 싶었다. 뭔가 높은 것을 바라기보다, 아무리 혐오감이 들더라도 드러누운 채 쓰는 글로 잔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 생각하지, 무슨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라면 또 모를까 고작 허리 삔 것 정도로 곧 죽을 사람처럼 절망하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 니시무라 겐타, 「고역열차」 감연―하다 (欿然―) 【형용사】【여 불규칙】 마음에 차지 않아 서운하다. ━감연―히 【부사】 감ː연―하다 (敢然―) 【형용사】【여 불규칙】 과감한 데가 있다. ━감ː연―히 【부사】 ┈┈• ∼ 난국에 임하다 ┈┈•.. 2011. 12. 2.
[문장배달] 猫氏生 - 황정은 이따금 꼭대기 방을 찾아가서 문고리를 바라보며 울었다. 아무리 불러도 열어주지 않는 것이 분하고 안타까워 어떻게된거야 어떻게된거야 하며 울었다. 영물이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운다고 사람들이 이 몸을 쫓았으나 이상하기로 말하자면 인간도 마찬가지잖아 인간도 충분히 이상하게 울잖아 훨씬 이상하게 울잖아. 밤이고 낮이고 인간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 황정은, 「猫氏生」 고양이뿐 아니라 많은 다른 동물들이 우리를 어찌 볼까 두렵습니다. 뉴스에 만연하는 여러 사건들, 누구에게 상처입고 구석에서 흐느끼는 사람들. 세상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고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꼈던 타인의 모습이 결국 나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나와는 다르다고 한없이 밀쳐내곤 합니다. 너 이상해, 그래서 싫어. 참.. 201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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